조카들을 본 영호가 얼른 시치미를 뗐다.
킴벌리가 제 아빠를 잡아끌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킴벌리의 입에서 조그맣게 ‘애쓰홀!’ 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키미는 삼촌을 좋아한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조카이다. 그녀는 그 동안 아빠도 안 좋아했고.
삼촌도 안 좋아한 키미는 엄마보다는 이모를 더 좋아했다.
챌리가 제 아빠의 앞을 가로막으며 제 삼촌을 계속 노려봤다. 챌리도 삼촌을 좋아하지 않는 조카이다.
그녀는 그 동안 학교에서 부모와 의논하라는 의제가 있으면 그 때나 아빠를 기다리곤 했다.
그 두 처녀가 아빠란 이를 막 따르고 좋아한 적은 전혀 없었다. 어쩌면 단 한번도 없었다. 아빠라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며 그가 집에 있건없건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랬는데.
엉뚱하게도 그런 아빠를 이모와의 불륜으로 문제가 일어나면서 다시 보게 된 것이었다.
그것에는 이모의 고백과 설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밖에서 나쁜 짓 하고 다니는데 아빠는 그런 것도 모르고 돈만 열심히 벌어온다고. 그래서 이모가 동정심에 그만 일을 저질렀다고.
그런 불쌍한 아빠를 삼촌이란 이가 해치려 드니까 역성을 드는 것이었다.
영호는 어이가 없어 허공을 향해 허허 웃었다.
그 때 어떤 차 한대가 빠른 속력으로 달려와서는 가게 앞에서 급정거를 했다.
영호는, ‘뭐야, 씨팔!’ 하며, 그 차의 헤드라잇 불빛을 손으로 가렸다.
“아, 새끼, 왜 자꾸 와서 성가시게 굴어!”
차에서 내리는 이는 형록이었다.
영호는 맥이 쭉 빠져 그만 물러섰다. "알았다구, 무슨 말인지."
“형록이 넌 또 웬일이야?” 운진은 어리둥절했다.
“챌리가 전활 했더라구, 삼춘이란 자식이 또 와서 아빨 괴롭힌다구.”
형록이 채 손을 쓰기도 전에 영호가 물러섰다. "알았다니까."
운진은 영호의 그런 태도에서 어쩌면 둘이 붙은 적이 있나 했다.
“영아씨만 아니면, 콱, 쌔끼, 그냥!”
형록이 치려는 시늉만 했다. "형님한테 완전 쫄아갖고 바지도 베린 주제에."
운진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어이구!"
형록이 영호와 악수를 하려고 했다. “우리 이런 일로 만나서 아웅다웅하지 맙시다. 어쩌면 우리 처남매제지간이 될지도 모르는데. 엉?”
영호의 얼굴에 형용 못할 당혹함이 피어 올랐다.
운진도 영호 못지않게 당황되고 부끄러워졌다.
“잘들 처먹고 잘들 살라구!” 영호가 누구에겐지 모르게 그 말을 던졌다.
형록이 움직이려는 것을 운진이 붙잡았다.
영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좀 전에 몰고 온 누이의 차로 향했다. 그는 여동생과 형록에 대해서 이미 부모로부터 들은 터라 더 이상 탓하지 않기로 하고, 형록에게 항복의 신호를 보였다. 두 팔을 들어 보인 것이다.
개판.
영호의 머릿속에 가득 찬 단어이다.
처제를 건드린 운진자식도 개판.
그러다가 버린 여자를 거둔 형록자식도 개판.
그리고 남편을 두고도 이놈저놈과 놀아난 누이도 개판.
주정부의 복권판매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류 살다가 나온 영호 자신도 개판.
영호의 차가 조금 거칠게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챌리와 키미가 안 보였다.
운진은 얘들이 갑자기 어디로 갔나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얘들이..."
"저기 안에 있네, 뭐." 형록이 턱짓으로 가게 안을 가리켰다.
그 새 누가 뭘 사러 왔는지 딸 둘이 카운터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갈래, 들어갈래?" 운진은 애들 부탁 받고 달려와 준 형록이 고맙다.
"바로 가지, 뭐."
"그럴래?"
"저거... 형님한테 그렇게 혼나고도 계속 까부네에."
형록의 의미있는 그 말에 운진은 영호가 사라진 방향을 봤다.
가게에서 단골인 흑인 남자가 나오고 챌리도 나왔다.
"클로스 안 해, 아빠?" 키미가 다 들리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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