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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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6. 00:45

   뜨거운 녹차잔을 두 손으로 만지며 호호 불어 마시는 영란은 친정엄마가 나무라듯 던진 말을 들었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여자는 서방 있을 때가 대접받는 법이다... 라는 말을.
그 말을 들었을 때, 영란은 친정엄마를 무시했다. "엄마.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다 착해진대."
   "그런 소릴..."
   "엄마 말이야. 내 서방을 엄마가 그렇게 미워하더니, 딸이 죽게 생겼으니까 이제 착한 마음이 들어?" 
딸의 그 말에 영란모는 다른 때 같았으면 딸의 그 싸가지 없는 말에 뒤잽이가 여러 차례 났을 텐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큰딸이야 말로 죽을 때가 되니까 착해지는지.
영호가 누이를 병원에 태워가고 기다렸다가 집으로 태워오는데 어느 날 기다리는 동안 어느 누구에게 불려가서 놀랄 만한 말을 들었다. 암세포가 무서운 속도로 번진다는.
그래도 방사선 치료를 받겠으면 계속은 하는데 환자에게 의지가 없어서 차도가 없을 거라는.
그런 치료에는 환자의 살겠다는 강한 마음이 따라야 한다고.
영호는 그 말을 집에 가서 전하고, 전매형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영란은 벌써 여러 여편네들이 연락을 멀리 하는 것을 알았다. 
그녀들이 갑자기 남편들을 핑겟거리로 집어넣는데 영란으로서는 기가 찼다. 
전에 밤 늦게까지 몰려 다닐 때만 해도 그녀들은 각자의 남편들이 안중에 없었다. 
골프를 늦게까지 치고 밤 늦게 음식점에 모여 먹고 마시며 떠들 때 혹간 어느 신랑이 전화라도 하면 그 여편네는 누가 있든지 말든지 퍼부었었다. 
그런데 새삼스레 남편들이 야단칠까 봐 모이는 게 안 된다니. 
영란은 알아보고 싶지 않았지만 남동생을 통해서 듣기로는 그녀들은 지금도 모이고 깨몰려 다닌다는 소문이다. 결국 영란만 골프 선생과 놀아났고, 까십의 주제가 되었고, 그리고 해결사라는 조가를 만나 가정생활은 파탄이 났는데. 
그 골프 선생은 지금도 뭇 골프 회원여자들의 영원한 ‘오빠’로 군림한다고.
조가가 알아서 처리했다더니 아닌 모양이었다. 
영호도 뭘 아는 눈치인데 누이에게 답변을 회피하는 실정이다.

   영란이 영아를 찾아와 뱃 속의 아이를 지우라고 요구했다. 형부와 체제 사이의 불륜도 불법이고, 둘 사이에서 씨앗을 낳아 키우는 것은 더더욱 죄악이고, 법에도 저촉된다고 윽박질렀다. 
만일 말을 안 들으면 폭행을 해서라도 유산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영아는 언니를 진정시키려다 대들었다. “형록씨가 낳아서 키운댔어! 왜 언니가 난리야! 낳아도 내 맘이구 안 낳아도 내 맘이야! 언닌 채리 갖고 이런 말 못 하지!”
   “이년이, 어디서 대들어!” 
영란이 없는 기운에 있는 힘을 다해 영아를 떠다 밀었다.
영아는 안 넘어지려고 벽을 짚었다. 그러다 그녀는 제법 불러온 배의 무게에 중심을 잃고 빙그르 돌며 방바닥으로 쓰러졌다. 
영아는 몸으로 넘어지면서 두 손으로 배를 잡았다. 그러면서 언니의 눈에 서린 광기를 올려다봤다. 영아는 허둥지둥 일어나 방으로 달아났다. 
그녀는 방문을 안에서 잠그고 침대 머리맡의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곧 영란이 방문을 부서져라 두드렸다. “문 열어, 이년아!”
영아는 가게 전화번호를 돌렸다.
형록이 전화를 받자마자 문 두드리는 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이게 무슨 소리야!” 했다.
   “언니가 와서 날 때리려고 해, 형록씨!”
   “경찰 불러!”
   “올 수 있어요?”
   “지금 당장 갈께!” 
형록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영아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문으로 가서 몸으로 버텼다.
영란이 밖에서 온 몸으로 문에 부딪히고 있었다. 
그 부딪히는 힘이 차차 차차 줄어들었다. 그리고는 조용해졌다.
영아는 문에 기댄 채 배를 이리저리 만져봤다. 넘어지면서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애기!’ 이란 단어였다. 임신부가 몸에 충격을 주면 제일 먼저 뱃속의 아기가 영향을 받는다는 걱정에 영아는 배를 자꾸 만졌다. 
   "언니?"
   "미친 년. 날 보고도... 미친 년." 
   영란의 죽어가는 음성이었다. "너도 나처럼 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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