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도 안 받고 아파트도 안 받길래... 밖이야?”
“애들이랑 밥 먹어, 지금.”
“맨날 외식하나 보지? 밖에서 먹어봐야 늘 그게 그건데. 집에서 해 먹어야 살로 가지.”
“그렇지.”
“영호가, 지가 실수를 했다고, 미안한가 봐요. 전해달래.”
운진은 지금 영란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영호 얘기는 꾸며댄 말인 걸 안다. 그는 하마터면 거짓말 하지 마 하고 야단칠 뻔 했다. “미친 자식! 지는 사내새끼가 입이 없나?”
“직접 말하기가 쑥스러운가 보지. 나 보고 그러네. 매형한테 미안하단다 말해달라고. 걔도 나이만 먹었지 귀엽게만 자라서 뭘 몰라. 자기가 이해해요.”
‘당신네 식구가 다 그렇지! 영아만 빼고.’
그에게서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안 나왔다. "하여튼 알았다고."
그는 일단 아내의 말을 들어주는 척 해서라도 환자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다.
쓰잘데 없는 말이 오가는 걸 알아챈 챌리와 킴벌리가 먹는 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그 놈도 낼모레면 마흔 하나야! 정신을 차려야지!”
“저도 이젠 알겠지. 하여튼 이번엔 정말 미안하대. 특히 애들한테.”
“됐어.” 운진은 빈 젓가락질을 했다.
“애들이 저한테 대드는 걸 보고 놀랐나 봐.”
“흥! 아니, 그럼, 애들은 눈 귀가 없는 줄 알았나? 됐소. 뭐 당신 동생 영호 지가 정말로 뉘우치고 지 자신을 위해서 개선하겠다면, 환영할 일이지. 보자구, 얼마나 가나.”
'그 버릇 개 주나? 죽어야 그 버릇 없애지!' 운진은 그 말을 정작 속으로 했다.
“애들은 뭐 먹는데?”
“챌리는,” 하는데 챌리가 손을 내저었다.
조용한 실내라 셀폰의 대화 소리가 들린 모양이었다.
“챌리는 다 먹구, 키미는, 난 걔는 미국애라 한국음식은 절대 안 먹을 줄 알았는데, 찌게를 시켜먹네? 숟갈로 떠먹으면서?”
“별일이네? 냄새난다고 지랄할 때는 언제고.”
영란이 ‘지랄’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 운진은 전화기를 귀에다 더 바짝 밀어붙여 말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했다. 모르긴 해도 지랄이라는 단어를 알아들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이가 가만 안 있을 것이었다.
킴벌리의 고개가 반쯤 쳐들어지다가 갸우뚱하고는 도로 내려갔다.
운진은 챌리에게 눈짓으로 엄마와 대화하고 싶으냐 하고, 물었다.
챌리가 제 손에 쥔 젓가락을 내저어 거절의 표현을 했다.
‘키미 뿐만 아니라 챌리 마저 제 엄마를...’
운진은 킴벌리를 눈으로만 봤다.
킴벌리의 표정이 싫어하는 듯이 보였다. 킴벌리가 아빠의 셀폰을 잡아당겨 끊어버렸다.
“Dad! Eat! (아빠! 먹어!)”
킴벌리의 돌발적인 그 행동에 챌리가 놀라 되려 안절부절했다.
운진은 핑게 김에 잘됐다고 작은애를 나무라지 않았다.
영란에게서의 전화는 다시 걸려오지 않았다.
그의 음식은 그 새 싸늘하게 식었다.
운진은 특히 챌리에게 남달리 신경이 씌였다.
챌리는 그야말로 피가 한 방울도 안 섞였으니 제 스스로 아무 관계 없는 외인처럼 느끼고 움직일 부담감이 있었다. 부모의 이혼 직전에 아빠에게 울며 하소연하던 것을 운진은 평생 못 잊으리라고 믿었다.
법정에서 뛰쳐 나간 챌리가 차로 지나려던 것을 쫓아가서 붙잡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하고, 생각만 해도 운진은 아찔하다.
운진은 식은 음식이나마 대강 요기를 떼웠다.
방사선 치료는 잘 되어가나 물어나 볼 걸!
설마... 하겠지?
담당 닥터가 누군지 알면 물어볼 텐데.
계산서가 왔는데 챌리와 키미가 합쳐서 냈다.
"아빠가 낼 건데, 왜?"
아빠의 그 말에 키미가 얼른 일어나기나 하라고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애비가 혼자 되니 딸 둘 중 그래도 키미가 나서는 모양인데, 애비 다루는 게 좀 거칠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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