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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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7. 04:25

   연말이 조용히 넘어가고, 그럭저럭 새해가 되었다. 
운진은 딸들을 데리고 모친에게 문안 드리러 갔다가 숙희가 서부로 전근갈 예정이고, 설이는 합병 때 감원을 당할 것이다라는 소식을 들었다.  
   “빌딩이, 해프 텅 비었어요. 그 아줌마는 캘리포니아로 가세요.” 설이가 말했다. 
   ‘그 나이에 객지생활이 용이한가...’ 
운진은 아무한테고 내색 않고 떡국만 얻어 먹은 후 아파트로 돌아왔다. 
   운진은 어렴풋이 그녀에게 여동생이 하나 있었던 것을 기억했지만 어디 사는지 모른다. 이름도 이젠 가물가물했다. 
언니 따라 무슨 희 일것만...
운진은 기분이 불쾌했다. 아니. 
그는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녀 얘기만 나와도 주눅이 드는 자신이 한심하고 마구 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준 조카가 새삼스레 밉다.

   딸들은 엄마를 보러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래서 운진은 혼자 영란을 보러 갔다.
집은 차임벨을 눌러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운진은 집 앞에 얼음을 뒤집어 쓰고 섰는 렠서스를 여러 번 돌아다봤다. 한참 안 움직인 모양...
문을 한참 두들겨서야 영란이 잠옷 바람으로 나왔다.
그녀는 머리가 산발이고, 그리고 그녀에게서 특이한 냄새가 났다.
   운진은 영란을 벗겨서 그녀가 좋아하는 버블 배쓰에 앉혀놓고 머리를 감겨 주었다.
   "자기, 나를 알고 부터 최초로 내 머리 감기는 거지?"
   "그래."
   "흠..."
   "영란아."
   "..."
   "영란아."
   "..." 
   그녀가 손 하나를 까딱했다. "말해."
   "닥터한테 얘기 다 들었어."
   "머리 속까지 긁어줘," 
그래서 운진은 손톱으로 아내의 머리를 긁어주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들어올까?"
   "왜?"
   "그러고 싶어."
   "당신도 울 엄마처럼 죽을 때가 됐니?"
   "흐흐흐! 그렇게 말하니까 영란이 답구나."
   "영란이 다워?"
   "말을 그렇게 해야 영란이지."
   "..." 그녀가 욕조 테두리를 손톱으로 긁었다.
   "그런데 처남, 영호는?"
   "아, 영호 걔가 저번 날 이상한 말 했어."
   "무슨 말을 했는데?"
   "전화기 줘 봐."
그래서 운진이 전화기를 찾아서 쥐어주니, 영란이 번호판을 들여다 보기만 한다.
   "왜?"
   "걔 핸드폰 번호가 생각이 안 나."
   "..."
   "자기 알어? 걔 핸드폰 번호?"
   "하지 마, 그럼."
   "흥! 나 암은 저 밑엔데 기억력이 왜 죽지?"
운진은 아내가 딴에는 웃자고 한 말 같은데 동조할 수가 없었다.
   "헹궈 줘."
   "눈 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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