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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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6. 00:40

   사람들의 마음에는 테러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가득했지만 어쨌거나 거리와 상점들은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탐내며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어느 날 오후 자신의 차 렠서스를 몰고 병원으로 태우러 온 동생 영호의 푸념을 귓전으로 흘려 들으며 영란은 뒷좌석의 부드러운 가죽 표면에 몸을 기댔다.
   “집은 그 동안 니가 봤니?”
   “그럼 또 누가 있는데?”
동생 영호의 그런 자만스런 말대꾸에 영란은 더 이상 듣기 싫다는 손짓을 했다. 
2 주를 입원해 있으면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영란은 이미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고통이 심했어서가 아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두번인가 왔다간 딸 둘은 이미 엄마 편이 아니었다. 마치 누가, 아빠가, 강제로 보내서 마지 못해 왔다는 표시를 대놓고 했다. 특히 작은놈은 전 보다 더 쌀쌀맞았다.
   ‘아마 내가 죽어도 그것들은 눈물도 안 흘릴 거야. 못된 것들!’
영란은 시트에 아예 누었다. “히타 좀 더 올려!” 

   같은 시각, 운진은 이제 전처가 된 영란을 보러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영아가 낳을 아기의 이름이 폴이라고 미리 지어졌으며, 아기의 애비는 형록이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으로 꽉 찼고...
그리고 그는 챌리가 친딸이 아닌데 속인 아내를 걸어 이혼 소송에 써 먹은 자신의 비열함에 울고 있었다.
형록이는 영아의 뱃속에 든 아기가 운진형의 아기라는 것을 알고도 그에게 아기의 이름을 물은 것이다.
   '그게 인간이야? 인간이 그럴 수가 있어?'
뒷좌석에 앉은 챌리와 킴벌리가 아빠의 우는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차가 멈추는 기색에 영란은 고개를 들어 밖을 살폈다. 
첫눈에 들어온 광경이 하얀 눈으로 덮힌 지붕이었다. “눈 왔니?”
   “한 이삼인치 왔지.”
영호가 저만 혼자 내려 차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암만 고급차라 모든 작동이 부드럽다 하지만 그 자극적인 금속성 마찰음에 영란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가 천천히 뗐다. 
영호는 환자인 누이에게 문 열어주는 예의도 없이 저만 집 안으로 사라졌다.
히터가 꺼진 차 안은 금새 식어갔다. 
영란은 차 키가 걸려있지않음을 보고 생각없이 사는 동생에 대해 혀를 차다가 차창으로 다가오는 물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전 남편이 문을 열어잡고 그의 등 뒤에 섰는 챌리가 이젠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킴벌리는 엄마의 시선을 피했다.
   ‘고집 쎈 놈 아니랄까 봐...’ 
영란은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웬 바람이 불어서, 들."
챌리가, “엄마,” 하며, 다른 한 손을 잡았다.
   “너 어떻게 왔어. 학교는?”
   “파이널 끝나고 윈터브렠이야.”
   “그렇구나, 참!” 
   영란은 킴벌리를 다시 돌아다봤다. "키미 왔어?"
엄마한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고 간 작은딸은 엄마를 여전히 외면했다. 
그 때의 일에 대해 미안해 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눈을 대충 치웠는지 아니면 그냥 녹게 내버려 두었는지 집 앞까지 연결된 시멘트 길은 군데군데 밟힌 얼음과 바닥이 어지러웠다. 
영란은 이제는 전남편이 된 운진의 팔에 온 몸을 의지하고 조심하며 걸었다.
운진은 저기 눈 조심해 하며 전처의 몸을 들다시피 해서 걷게 했다.
   “가게는, 나 땜에 닫았어요?” 영란은 힘들여 물었다.
   “아니. 아줌마들이.” 
   운진의 대꾸는 짧막하고 냉정했다. "그래서 실은 곧 가 봐야 해."
   "영아년이 안 봐 줘?"
   "..." 
   운진은 대꾸않고 전처의 몸을 달랑 들어서 현관 앞 댓돌에 올려줬다. "발 조심해..."
챌리가 아직 갖고 다니는 열쇠로 문을 땄다.
키미는 뒤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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