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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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9. 01:17

   영아의 그런 걸 식구들은 그녀가 눈이 높아서 웬만한 남자는 눈에 안 찬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그러나 운진은 아내에게 처제의 문젯점을 지적했고, 영란은 남편의 의견에 동의했다. 
형록과 영아를 둘이만 놔 두면 불안하다고 여긴 점에서 한가지 다르게 알고 있는 것은, 운진은 소위 처제의 싸가지에 형록이 핏대를 내고 싸울까 봐 불안한 것이고, 영란은 행여 젊은 남녀 둘이 섣불리 눈이 맞아 붙을까 봐 불안한데, 실은 이유가 둘 다 아니었다. 
영아와 형록은 서로에게 관심이 전혀 없다. 아니. 
둘은 서로를 이를 갈며 미워한다. 
서른 셋의 형록은 영아가 돈 장난하는 것을 안다. 즉 영아가 돈을 주기적으로 훔치는 것을 안다. 
   약 보름 전, 영아가 돈을 틀리게 입금했다가 은행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 전화를 형록이 받았다. 은행에서 오너나 매니저를 찾는데 형록은 지금 없다고 그대로 처리하라고 해 버렸다. 
눈치를 챈 영아가 그 날 하루 종일 형록을 들볶았다. 평소처럼 말로 못살게 들볶은 것이 아니고 그의 입을 막으려고 졸졸 쫓아다니며 들볶았다. 그가 입을 열면 형부는 쪼다로 무시하더라도 성질이 지랄 같은 언니가 가만 안 놔둘 것이 뻔했고, 가게 감시를 오빠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날 형록이 그녀를 미친 년처럼 취급하고 완전히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가끔 그녀를 위협했다. 그러면서 건드릴 낌새는 안 비쳤다. 
그래서 영아는 불안도 하고 약도 올라 그에게 대놓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돈에 손을 대는 버릇은 못 고쳤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처음엔 잔돈푼을 만지던 손버릇이 결국 은행 입금을 또 건드렸다. 일은 이미 저질러졌고 영아는 형록의 입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데이트 정도로 그의 입을 막아보려 하는데 형록이 전혀 꿈쩍도 안 했다...

   영아의 첫번째 돈장난은 은행에 잔고가 충분히 있었으므로 바로 표시나지 않았다. 그러나 두번째 돈장난은 가게에서 배달 대금으로 끊어준 수표의 금액이 초과함으로써 결국 말썽이 나게 되어있었다.
운진은 형록을 퇴근시키고 그 날의 매상을 마감하느라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그는 그 날 들어온 돈과 매상을 맞춰보고 또 백여불이 비는 것을 알아냈다.
   '누구야. 형록이야, 처제야... 오늘은 일부러 영호새끼를 못 나오게 했으니, 둘 중 하나인데, 처제는 일찍 들여보냈고 형록이 이 자식이 장난을 하나?'  
   운진은 가게 불을 끈 후, 평소 좋아하는 맥주인 밀러 라잇 한 병을 따 들고 뒷방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며칠동안 게으름을 피운 덕택에 뜯어보지 않은 우편물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신문지와 섞여 있었다. 
신문은 주로 그가 먼저 읽고 나면 형록이 얻어다가 연재만화도 보고 기사를 읽는데 신문 놓여있는 것이 마치 누가 일부러 그런 것처럼 똑바로 있었다.
그는 신문을 들췄다. 신문 밑에 은행 로고가 인쇄된 봉투가 있었다. 
운진은 맥줏병을 책상 위에 놓고 은행에서 온 그 봉투부터 뜯었다. 
   한달에 한번씩 오는 잔고증명이면 사용한 수표를 동봉하기 때문에 봉투가 두터워야 하는데, 이번 것은 얇았다. 느낌에 부도났을 때 오는 그런 편지 같았다. 봉투를 단번에 주욱 뜯어보니 역시였다.
수표 번호와 금액을 기억에 더듬어 보니 배달대금으로 준 수표가 부도가 났다. 
은행에서 벌금을 이십구불을 먹였고 잔고가 부도난 금액에서 천불이 모자랐다. 그렇다면 이달에 넣은 돈에서 우선 재디파짓으로 빠져 나갔을 테고 더 놔두면 다른 것이 연쇄부도 날 것이다.
이것은 지난 달 누군가가 입금을 했을 때 실수를 한 것이다. 
   운진은 그 편지를 내려놓고 책상 서랍을 열었다. 맨 윗칸에 지난 한달 동안 입금시킨 은행 영수증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운진은 제발 아니기를 바라며 그 영수증들을 최근 것부터 하나하나 점검해 나갔다. 
   아! 지난 달로 거의 넘어갈 뻔한 맨 마지막 영수증이 온통 낙서로 어지러웠다. 마치 누군가가 볼펜이 나오나 안 나오나 연습해 본 것처럼 얼기설기 그어놨는데, 운진은 그 쪽지를 집어들어 불빛에 비춰봤다. 
볼펜 자국이 교묘하게 지나갔지만 입금액은 틀림없이 이천육백불이다. 
숫자로 2,600인데 잉크가 교묘하게 3,600으로 착각하게 보이게 했다. 날짜는 기억 안 나지만 그 날 운진은 배달대금을 끊고 처제에게 입금하라고 삼천육백불을 준 후, 한인주류회 회의에 참석하러 외출했었다.  
그 때 책상 위의 전화가 울었다. 이 시간에 어디서? 집? 웬일일까.
   “응.” 운진은 대답했다.
   “자기 왜 안 와요? 지금 몇신줄 알어? 국 다 식었는데.”
운진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처제한테 집에서 밥 먹도록 하라고 시킨 것이 기억났다. 
   “돈은 그냥 금고에 넣어놓고 계산은 내일 해요.”
   “응. 처제 자나?”
   “몰라. 좀 전까지 비데오 보던데. 왜요, 바꿔 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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