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둘은 데이트가 시작됐는데...
그 후 운진은 그 짬뽕 양보에 대해 칭찬을 바랬는데, 도리어 숙희에게서 핀찬을 들었다.
"먼저 남들 앞에서 표시를 내요? 우리가 안 사이는 아니었지만."
"제가 표시를 냈나요? 내 딴에는 보통처럼 군다고 했는데."
"사람들한테 나 짬뽕 좋아하는 것처럼 표시한 거잖아요."
"에이. 그 사람들이 한숙희씨 짬뽕 좋아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내가 시킨 건데."
"그럼, 오운진씬 내가 짬뽕 좋아하는 거 알고 미리 시킨 거 아니었어요?"
"아, 이럴 때 알고 있었다고 해서 점수 따는 건데."
"그냥 가만이나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갔을텐데 꼭 내색을 해서 점수를 잃죠?"
"아이. 짬뽕 좋아하실 거 같더라니."
"Too late!"
그 이 후 두 사람은 어디 멀리 가서 데이트를 하게 되면 우선 교포가 하는 중화요리 집을 찾았고, 찾게 되면 의례히 짬뽕을 시켜서 먹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데이트 할 당시 주로 버지니아로 먹으러 다녔다.
둘은 일요일마다 성가대에도 둘 다 시치미 떼고 열심히 참석했다.
둘은 남들이 있는 데에서는 둘 다 서로 모르는 척 했다.
그래서 만일 어떤 여자가 운진에게 접근해서 말을 걸거나 반대로 어떤 남자가 숙희에게 말을 걸거나 하면, 나중에 둘은 꼭 누구냐, 무슨 말을 했느냐, 서로 따지고 물었다.
당시 운진은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면서 삼촌의 화원에서 일을 했고.
숙희는 따로 나가 살면서 몸이 아주 안 좋을 때 집에 와서 기거하는 그런 생활을 했다.
둘이 만날 당시 숙희는 몸도 안 좋았고 회사에 큰 일이 없어 집에서 다닐 때였다.
둘이 만날 수 있는 때는 서로의 일이 끝난 후였다.
그들이 살았던 동네는 동서로 뚫린 길을 가운데로 놓고, 북쪽은 비싼 신식 고급 주택들이고 남쪽은 오래된 즉 토백이들이 사는 비교적 싼 집들이었다.
숙희네는 북쪽 고급집들 중에 하나였고, 운진네는 남쪽에서 살았다.
마침 두 집에 개가 있었다. 운진네는 잡종 독일 세파트였고, 숙희네는 순종 스피츠였다.
둘은 저녁에 개 걸리는 구실로 만났다. 누구도 싫어하는 개 걸리기를 둘은 각자의 집에다 책임진다 하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꼭 나왔다. 둘은 개들과 걸으면서, 여름이면 동네의 하이스(High’s) 가게에서 아이스크림도 같이 사 먹고, 가을이면 핫 쵸콜렛을 사 마셨다.
개들이 싼 똥은 의례 운진이 치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주 서서히 서로를 탐색해 나갔다.
그러다가 숙희네 개가 갑자기 남의 집으로 가는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없는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숙희는 처음 들어보는 이모라는 이가 하도 그 집 스피츠를 탐내니까 숙희의 모친이 선뜻 주어서 보냈다는 게 이유였다.
그 날 집에 와서 알게 된 숙희는 당장 나갈 구실이 없어졌다. 이미 보낸 개를 당장 도로 데려오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빈 몸으로 나가자니 어색하고, 창가에 서서 혹 그가 보일까 기웃거렸지만 허사였다.
의논도 없이 개를 주어 보낸 모친에게 화도 나고 또 그를 만나러 못나가니 화도 나고 해서 방에서 식식거리는데 동생 공희가 뭣 좀 사다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숙희는 벌컥 화를 내고 보니 동생의 표정이 묘했다.
그래서 나가게 됐고, 운진을 만나서 개가 없어진 얘기를 했고, 그래서 둘의 개 걸리기는 그 날 이후로 끝났다.
숙희가 그 날 저녁에 돌아와서 동생에게 살짝 물으니 두 사람의 개 걸리기 데이트를 모친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개를 치우고, 다시는 아무도 못 키운다고 못을 박았다고 했다.
그래서 둘은 대신 방과 후나 퇴근 후 잠깐씩 다른 동네에서 만나는 데이트를 시작했다. 두집 다아 집에서 저녁은 꼭 먹어야하므로 식사는 같이 못 하고 간단히 도넛집에서 차와 도넛 하나씩을 했다.
운진은 개를 밤에도 걸리기 시작했다. 그 때는 그녀네 집 앞을 지나가며 개를 약올려서 짖게 했다. 그러면 숙희는 개의 소리를 분별하고 창가로 가서 밖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곤 했다.
그녀는 부모가 잠시 집을 비운 때면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그럴 때는 공희가 따라 나서서 아버지가 모는 차가 오나 안 오나 망을 봐주기도 했다.
그래 봤자 두 사람은 수박 겉 핡기식의 대화나 주고 받았다.
당시 운진은 순진했고 숙희는 가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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