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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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8. 03:49

   영란은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가게를 닫으라고 시키고 남편과 실로 몇년 만의 저녁 나들이를 했다. 
저녁도 근사한 데 가서 와인을 더불어 먹고 비 오는 밤 거리를 차로 돌아다녔다. 
   신혼 때는 바람 쐬러 나갈 일이 참 많았었다. 바람이 불면 그야말로 바람쐬러, 하늘이 맑으면 밤하늘의 별을 보러 공원에 갔다가 경찰한테 훈계도 듣고, 비가 오면 인적이 끊어져 조용한 거리를 밤새 차를 몰고 다녔었다. 
그래도 그 때는 피로를 몰랐었다. 
영란은 운전하는 남편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녀로서는 아주 아주 오랫만에 하는 짓이다.
그러면 그는 남은 손을 대충 둘렀다. 
   “나 사랑 안 하지, 그치.” 영란은 옛날처럼 어리광을 부렸다. 
   “그런 부정적인 질문은 단정적이라는 것 쯤은 알텐데?” 운진이 눈썹을 치켜떴다.
   “당신, 나 원해?”
   “어떤 식으루?”
   “나, 멀리 해두, 생각 안 나?”
   “글쎄?”
   “날 안 안아두, 어떻게 처리하는데? 당신, 좀 밝히잖아.”
   “이젠 늙은 모양이지.”
   “거짓말! 치이, 난 다 알어.”
   “알면 왜 물어보시나?”
   “당신, 옛날 애인 생각하지, 그치.”
   “이번엔 메뉴가 바뀌었군.”
   “나 다 알어, 뭐. 아, 존심 상해. 참고 말하려니 존심 무지하게 상한다, 으응, 그치.”
   “나 몰래, 뭐, 뒷조사라도 하셨나?”
   “당신, 말도 없이 사라졌길래 화가 나서 당신방 다 뒤졌더니, 사진이 나오던데?”
   “사진?”
   “그래!”
   “사진이라니?”
   “당신 옛날 애인이겠지, 뭐!”
   “뭐라구?”
영란은 새삼 남편의 얼굴을 봤다. 남편은 정말 놀라는 표정이다. 남편은 꾸미는 거짓 표정 따위를 짓지 않는다. 
   “어딘진 몰라, 나두. 화가 나서 책들을 다 엎었더니 어디선가 사진이 하나 나오더라구.”
   “난 모르는 일인데?”
   “시침떼지 마! 거기다 숨겨놓고 매일 봤으면서! 책 보는 척 하면서.”
   “옛날에 총각 때 한장씩 나눠 가진 건 아는데, 어디다 뒀는지는 모르는데?”
   “진짜 몰랐어? 진짜 말해 봐. 진짜면 용서해주구. 아니면 이대루 쫓아낼 거야.”
   “그냥 쫓아내시게.”
   “말 다 했지! 지금 그 말 진심이지, 엉?”
   “헛참. 아랫방으로 내보내더니 이젠 쫓아내시겠다?”
   “진짜 아니면, 진짜로 몰랐으면 용서해 준다 했지! 아니면 내쫓구. 난 그런 말도 못해?” 
   영란이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울면서 마구 퍼 부었다. “남편이 쓰는 방에서 어떤 여자 사진이 나오는데 어떤 미친 년이 좋아해! 누굴 바본 줄 알아? 사진을 보고 까무라쳤는데! 이러니까 날 멀리 하는구나, 이런 걸 숨겨놓고 보면서, 응? 만나기도 하나 보다. 그럼, 난 뭐야. 나아, 처음부터 당신, 나 몸만 데리고 사는 거 다 알어. 마음은 늘 딴 데 가 있구. 난 바본줄 알어? 그래두 좋아서, 사랑해서, 애두 낳구 어떻게든 남들 눈에는 잘 사는 것처럼 보일려구 늘 행복한 척 생글생글 웃구, 치이, 뭐? 내쫓는단 그 말 했다구 그것만 따지고 들어? 그리구 만일, 그게 바람 피운 흔적이면, 쫓겨 나야지. 당연히 쫓겨나야지!”  
한참을 잠자코 운전만 하던 운진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 사이가 벌어졌다고 하는데, 그래, 벌어졌다고 칩시다. 그래서 내가 옛날 애인 사진이나 본다? 당신이 이러니까 내가 자꾸... 관둡시다.”
   “자꾸, 뭘! 왜 말하다 말어! 그리고, 옛날 애인 사진이라니!”
   “아냐아.”
   “뭐가 아냐! 빨리 말 해! 말 안 하면 오늘밤 못넘길 줄 알어!”
   “당신은 내가 당신을 속인다고 생각하나 보지?”
   “속이지 않는 건 알어.”
   “자! 지금 당신이 사진 하나를 찾았대." 
   "진짜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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