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그래 놓고 순간 후회했다.
‘내일 가게에서 물어볼 걸, 실수다! 에이...’
곧 영아가 졸린 음성으로 나왔다. "네, 형부."
“응. 처제. 디파짓 금액이 틀린 게 보여서. 뭐 잘못 됐나 하구.”
“아, 언제꺼요?”
처제의 음성이 흔들린다고 느낀 운진은 얼른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응. 모르겠어. 찍을 때 카피가 잘 안 됐나 봐. 내일 얘기 하자구. 언니보고 나 금방 들어간다고 말해줘, 응?”
“형부, 제가 금방 갈께요!"
“아니, 아니?”
그가 당황해 하는데, 전화가 끊겼다.
‘뭐야... 얘가 왜 이래? 금방 온다니 무슨 뜻이야?’
운진은 수화기에서 삑삑삑 소리가 나기 시작한 다음에야 내려놓았다.
그의 눈 앞에 처제의 열몇살 적 모습이 떠올랐다. 얼굴이 예쁘고 눈이 동그란 소녀가 처음 인사 차 들른 운진을 졸졸 따라다니며 배시시 웃곤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때 영아는 그 나이에 일찍 발달한 몸매를 아무리 집안이었지만 옷이라고 아주 조금 걸친 모습이었다. 홀쭉하게 들어간 배를 다 내놓고 짝 붙은 핫바지를 입었으니 사타구니께가 완연히 나타났던.
그가 영란과 결혼한 후 한집에서 살 때 영아는 형부가 소파에만 앉아있으면 옆에 와서 뒹굴었다.
그녀가 여자 나이 한창이라는 이십대 초반이었을 때는 집안이 그녀에게서 발산하는 후광으로 환했다. 그랬던 처제가 벌써 서른을 꺾고 유치하게 돈 장난을 하다니.
'형록이가 돈을 훔치면 자르면 되는데, 처제 그게 그러는 거면... 젠장, 내 맘대로 자를 수가 있나. 처갓집에서 감싯꾼으로 보낸 딸을 자르게 놔둘 리가 없지.'
그가 통화를 마친 그 이후로 아내에게서 재촉하는 전화도 다시 안 오고, 이십분도 채 안 되어 영아가 가게에 나타났다.
“올 것까진 없는데. 내일 얘기해도 된닸잖아.”
운진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처제가 오도록 기다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게요, 그러니까...”
책상 위를 살펴보던 영아가 은행에서 부도났다고 온 편지를 봤다. “어, 이게 왜 부도났지?”
"자세히 안 읽어 보고도 뭐가 부도났는지 대번에 아나 보지?"
"네?" 영아가 곁눈질로 운진을 살폈다.
“그 때 내가 삼천 육백불을 줬잖아. 은행에 넣으라고.”
“그, 그랬나? 삼천 육백불 짜리는, 이게, 이건가?”
영아가 몹시 당황하며 입금영수증들을 뒤적거렸다.
운진은 처제가 영수증들을 몇번이고 뒤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맥줏병을 기울였다.
잠옷 위에 코트만 걸치고 나온 영아는 정신없이 영수증을 찾는 척 하느라 앞으로 숙인 가슴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쩔쩔맸다. 아니면, 그걸 몰랐을까?
영수증의 앞장은 손으로 쓴 삼천 육백불이고 뒷장의 기계 인쇄는 이천육백불이었다.
“처제가 그랬나?”
“네? 그게 무슨...”
“볼펜으로 낙서한 거.”
“아, 그랬나, 난가? 잘...”
영아가 은근히 앞가슴을 노출하려했다. 그러면서 형부를 곁눈질했다.
운진은 일단 그 집 여자들의 특징인 풍만한 가슴을 가진 처제의 앞섶을 보여주는 대로 들여다 봤다.
그녀는 잠옷만 안에 입었을 뿐 브래지어도 안 했다. 마치 젤 넣고 확대수술한 유방처럼 크고 탱탱할 것 같은 모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욕정이 일게 충분했다.
그는 손에 든 맥줏병을 비우고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영아가 그 소리에 자지러지듯이 놀랬다.
운진은 처제의 뺨따귀를 보기좋게 갈겼다.
영아가 어맛 하며 옆으로 나가 떨어졌다. 그녀가 앞으로 수그리며 일어나려는데 풍만한 유방만큼 또한 풍반한 둔부가 그의 눈 앞에서 바지를 찢고 나오려 했다.
순간 운진은 겁탈이란 단어가 뇌리에서 폭발했다.
“언제고 안 걸릴 줄 알았나? 괘씸한 것 같으니라구! 그리고 내가 언니와 사는 형분데, 어디다 대고 값싼 유혹인가! 창녀두 아니구. 썩 나가!”
영아가 후다닥 일어나 가게를 나갔다.
순간 운진은 아뿔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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