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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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9. 01:18

   운진은 맥줏병을 한개 더 비우고 나서 집으로 갔다. 
집 안에 들어서니 이미 자매간에 난리가 나 있었다. 영아는 머리가 뜯어져서 산발을 한 채 마루에서 엉엉 울고 있고, 영란은 두팔을 허리춤에 얹고 서서 동생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 뭐야, 또오!’ 
   운진은 문간에서 도로 나갈까 하고 망설였다. 보나마나 아내가 난리를 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저 바보가 언니한테 불었군.'
   “자기 왜 인제 와! 내가 국을 몇번이나 데웠는줄 알아?” 영란이 운진에게 신경질을 냈다.
   “으응, 그랬군. 난 그것도 모르고.” 
   운진은 처제를 외면하며 부엌쪽으로 가려 했다. "그냥 먹자고." 
영아가 운진의 다리를 와락 붙잡고 매달렸다. “형부! 다 불게요. 언니 좀 말려줘요, 네? 아님 나 오늘 언니한테 맞어 죽어요! 형부. 네?”
운진은 아내를 봤다. 
그랬다. 
아내는 한번씩 돌아버릴 때 보여주는 쾡한 눈빛이었다. 
아내가 한번씩 돌아버릴 때는 친정엄마 보고도 야! 너! 하고, 한번은 친정엄마를 때린 적도 있었다. 
아내가 그런 눈빛으로 변할 때 운진은 마음이 착 갈아앉는다. 마음이 잔인해지도록 침착해지고 아내의 광기에 한마디도 안 하고 눈으로 맞상대 한다. 
그럴 경우 같이 고함지르면 그녀를 못 당한다. 
영란의 광기를 이기는 방법은 유독 운진에게만 있는데, 침묵의 멍한 시선이다. 
   “이년이, 언제부터 형부야, 이년아! 니가 언제 챌리아빠를 형부라 했어, 이 쌍년아!”
   영란이 욕설과 함께 동생에게 발길질을 하고 머리채를 잡아뜯었다. "형부 흉볼 때는 언제고!" 
영아가 아이고오! 아이고오! 하고, 숨 끊어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영아의 옷이 다 벌어지고 젖가슴이 다 나왔다. 처제의 가슴은 가게의 어두운 사무실 안에서 봤을 때 보다 환한 불빛 아래 더 잘 보였다.
영아는 배를 걷어채인 것 때문에 아파서 젖이 다 나온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크고 둥그런 유방에 분홍색 젖꼭지들이 탐스러우며 아내의 옛날 가슴보다도 더 좋았다.
운진은 처제의 노출된 풍만한 젖가슴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다가 부엌으로 갔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그놈이 아는 체 하며 바지 안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아내의 ‘다 내놔, 이쌍년아!’ 하는, 말소리를 들으며 운진은 부엌 냉장고 안에 혹 맥주나 뭐가 있나 들여다 봤다. 그러나 그는 냉장고문을 얼른 닫아야 했다.
영란이 식식거리며 부엌으로 왔다. “내가 오늘 저년 죽여 버릴 거야!”
운진은 아내에게서 어떤 끼를 눈치채고 돌아섰다. 
   “자기, 자기 좋아하는 동태국 끓였어. 무우 넣고.”
   “오오, 그랬군. 그럼, 먹어 봐야지.” 
   운진은 아내와의 충돌이 두렵다기 보다는 싫다. 
그는 그래서 애써 부드럽게 대했다. "얼른 차리라구."
   “그래, 앉어, 자기.”
아내가 달라지려고 애쓰는 게 보여 운진도 달리 대하려고 노력했다. 
영란이 국을 다시 떠오고 전자밥통에서 밥 푸는 걸 보며 운진은 진정 우러나오는 마음에서 아내의 허벅지를 건드렸다. "당신 화내는 거 보니까 더 셐시하다."
   “으응! 자기, 돌았어? 왜 그래요.” 
   영란이 몸을 틀며 눈을 흘겼다. “자기 술 마셨지!”
   “한 병.”
   “한 병이 넘는 것 같은데?”
   “그건 또 어떻게 그리 잘 아나?”
   “내가 누구야. 치이, 날 속여? 저년이 지금까지 대체 얼마를 해 처먹은 거야!”
   “뭐 얼마 했겠나? 이번 실수로 그랬겠지.”
   “하여튼 우리집 식구들 그냥 안 놔 둘 거야! 내가 좀 자기하고, 응? 서먹해졌었다고 글쎄, 저것들이 덩달아 더 지랄들이네? 내 내일 엄마도 불러들이고 다 따질 거야. 이것들 내 그냥 안 둬.”
   “여보. 그냥 놔 두고 조용히 삽시다. 다아 우리 식군데 뭘 따지고 그러나. 아, 처제가 돈 좀 만졌으면, 평소에 충분히 못 해주니까 심통이 나서 그랬나, 하고. 또 이번에 처음 알았으니까, 당신이 따끔하게 혼내고 다신 그러지 말라고 해. 남인가? 그리고 처제도 나이가 얼만데 아직도 손찌검을 하나! 상대방의 자존심도 생각해 줘야지.”
   “자기, 재하고 뭐 썸씽 있니? 왜 두둔해?”
그런데 영란의 그 말이 마치 어떤 예언같이 운진에게 들렸다. "말 골라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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