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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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9. 01:20

   숙희가 운진과 손을 처음 잡은 것은, 아니, 그에게 잡힌 것은 교회 청장년회 등산소풍 때였다. 
단풍구경을 가기로 교회의 허락을 받고 청년회 회장이 집집마다 전화를 했다. 
그 때 숙희의 집안은 공희의 결혼 문제로 어색했었다. 여동생이 언니를 앞서 가면 언니의 혼삿길이 막힌다는 미신적인 믿음 때문에 그녀들의 모친이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하던 중이었다. 
   숙희는 동생의 결혼을 시키라고 적극적으로 종용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동생을 좋다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보내자고 강력히 밀어붙이던 중이었다. 
숙희는 청년회 회장에게 참여하겠다고 대답하고 나서 운진에게 전화를 했다. 
청년회 소풍에 가느냐고 물으니 그의 대답이, “당연하죠! 내가 교회 버스 운전순데?”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토요일날 아침 일찍 교회에서 모이기로 했다. 
스카이라인 드라이브라 하면 그 길이가 메인 주 북쪽 끝에서 남쪽은 테네씨 주까지 뻗은 애팔라치아 산맥 도로인데 가을에는 단풍 구경으로 유명한 국립공원이다. 그 코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밟으려면 차로도 며칠이 걸린다고 했다. 
쳥년회는 그 코스를 다 도는 것이 아니라 버지니아 주의 쉐난도아 산맥 일부만 타는 것이다.

   떠날 때 운진이 처음 말 들은 대로 운전 책임을 맡았다. 
운전석 옆자리에는 인솔 책임자인 전도사가 앉았고 숙희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숙희가 앞을 볼 때마다 차의 백미러로 운진과 눈이 마주쳤다. 눈으로 장난하며 한눈 팔다가 행여 운전부주의로 사고라도 날까 봐 숙희는 앞시트에 숨어 머리를 감추었다.
   한참을 가다가 교회 버스가 큰 길가의 맥다널즈(McDonald’s)로 꺾여 들어갔다. 거기서 아침겸 점심을 사 먹을 사람은 사 먹고 김밥 같이 도시락을 싸온 사람은 버스 안에서 먹기로 했다. 
운진과 숙희는 안 싸온 일행에 끼어 맥다널즈로 들어갔다. 
주문대가 네 군데 다 열렸는데 운진이 숙희의 손을 확 잡아끌며 맨 끝으로 갔다. 
숙희는 얼결에 손을 잡혀 끌려가다가 깜짝 놀라 손을 뿌리쳤다. 
그랬더니 그가, “오 참! 내 정신 좀 봐!” 하며, 히히히 웃는 것이었다.
   “난 배고프실까 봐 빨리 오다되는 줄을 찾느라구, 히히히.”
숙희는 메뉴판을 올려다보며 그에게만 들리게 조그만 소리로, “좀 무드있게 할 수 없어요?” 하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 아프단 말예요. 너무 꽉 쥐어서.”
   “아, 나도 모르게 그만...” 그가 뒷머리를 긁었다.
그 때 청년회 회장이 숙희에게 다가왔다. “아, 여기 계셨네? 이리 오시죠.”
   “네?” 숙희는 차게 쏘아 대꾸했다.
   “저기, 우리가 미리 많이 오다하거든요? 거기에 미쓰 한것두 있어요. 오세요.”
   “아니, 괜찮아요.” 숙희는 운진 옆으로 더 가까이 갔다. 
   “우리 오다할 건대요, 황형?” 운진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인제 오다해서 언제 먹어, 오형두 차암. 예의도 없지.” 
성렬(黃星烈)이 그러면서 숙희의 팔을 잡으려 했다. 
   “어머? 왜 이래요! 별일이야, 정말.” 숙희는 성렬의 팔을 피해 운진의 뒤로 피했다. 
   “뭐 둘이 같이 나가는 사이도 아니잖아!” 성렬이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보였다.  
   “같이 나가는 사이든 아니든, 그게 황형하고 무슨 상관에요?” 운진은 둘이 아직 남들에게 공개할 단계가 아니라 몰래몰래 만나고 있는데 정작 제삼자가 끼어드니 난처했다. 
그 때 숙희가 운진의 손을 잡았다. “얼른 오다해요. 신경쓰지 말구.”
놀랜 사람은 운진이었다. 하마터면 그녀의 손을 뿌리칠 뻔했다. 
그러나 그는 이 때다 하고 그녀의 손을 쥐었다.
   “으응?” 
   성렬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 미쓰 한의 수준이 겨우 이 정돈인지 몰랐는데? 겨우 미스터 오 같은 사람하구? 흥! 그렇구먼. 역시. 사람은 더 두고 봐야 해.”
   "여기 미스터 오가 어때서." 숙희가 말을 탁 깠다.
   "끽 해야 꽃집 같은 데서 알바이트 하는 수준 갖고. 똑같은 수준인가?"
그 말에 대꾸할 구실을 찾는 운진을 놔두고 숙희가 쏴붙였다. “우리 수준이 어때서? 꼴값 떨구있네. 지 생긴 거나 잘 보고 다닐 것이지! 노가다 주제에.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뭐라 한다더니.”
그녀의 말에 주위에서 지켜보던 청년회 일행들이 “오오와아!” 하고, 박장대소를 했다.
운진은 성렬의 분위기를 보는 게 아니라 숙희의 눈치를 봤다.
숙희가 운진에게 눈을 부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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