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영란이 모르는 게 있었으니 운진은 초창기부터 처제를 한집에 데리고 있는 게 싫었다.
당시 스무살 갓넘은 여자가 차림새가 보통 흐트러진 게 아니었다.
여름이면 아예 브래지어도 안 해서, 유방이나 작나, 젖꼭지가 셔츠로 튀어 나오고, 운진은 더우면 벗어 제껴야 하는데 처제가 있으니 맘대로도 못 하고 겸사겸사해서 아내를 들어앉히고 처제를 쫓아보내려 했었다.
영란이 남편인 운진을 멀리 했을 때 가게에 일손이 필요해진 운진은 울며겨자 먹기로 처제를 데려다 가게 종업원으로 썼다.
운진은 아내가 가까이 오지 못 하게 하는 동안 솔직히 다른 생각도 즉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돌린 것은 사실이었다. 눈길만 돌렸지 정작 외박한다거나 바람 피운다는 것은 상상도 안 했다.
그의 눈 앞을 어지럽히는 데에 한몫한 이는 당시 스물 넘어 한창 팟팟한 처제였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형부 형부 하고 잘 따르던 처제는 이십대 처녀가 되어서도 형부에게 치대고 육탄접근도 서슴치 않았다.
운진은 가게를 두번 확장 수리해서 지금의 하드 리꺼, 비어 와인, 그로서리, 복권 그리고 캐리아웃(carry-out)도 겸한 대규모로 발전했다…
그래서 영란은 친정 식구에게 큰소리를 친다...
남편의 속은 전혀 모른 채. 건물을 산 후 임대료가 밀린 친정집 가게를 내쫓고 차지한 꾀를.
장인인 최 장로가 사위인 운진에게 물었다. “그래, 자네가 어디 봐 논 남자가 있나?”
“내가 말해요?” 영란이 밥수저를 입에서 떼며 남편에게 물었다.
운진이 아내를 쳐다봤다. “그러든지.”
“으음! 저기, 우리 가게에 벌써 십년 가까이 일하는 청년이 있는데요, 아버지, 우리 챌리애비가, 좀 잘 봤나 봐요. 영아랑도 오래 같이 일했구. 그래서... 나머지도 내가 말해요?”
“그러든지.”
“챌리애비가 가게 하나를 물색해 놨는데요, 아버지, 둘이 결혼시켜서 그 가게를 하게 하면 어떠냐고 그러네요. 챌리애비가.”
“그렇다면 언제 한번 그 청년을 초대하자꾸나. 얼굴 좀 보게.” 하고, 최영감이 말했다.
그 때 영란의 모친이 초치는 소리를 했다. “바탕도 모르는데!”
운진의 안색이 조금 안 좋게 변했다. 그 놈의 바탕도 모른다는 말이 그에게는 원수 같다.
그가 숙희와 결혼말이 오갔을 때 그의 모친이 앞에 내세워 반대한 말이었는데, 이젠 장모가 쓴다.
바탕. 바탕. 그 놈의 바탕! 십할, 니들의 바탕은!
그는 장모를 몹시 미워한다.
영란도 친정엄마를 미워한다. 서로 말은 하고 때로는 의논할 건 하지만 속으로 대놓고 미워한다. 남편이 싫어해서 덩달아 그러는 것은 아니고, 결혼 초 사위란 자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불알 두쪽만 달고 왔다고 온 동네에 소문 낸 이후로 모친을 갋는다.
물론 남편은 부잣집 외동아들 출신이다. 그가 집에다 손 벌리면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푼도 얻어오지 않았다. 영란도 남편에게 시집의 부에 대해 언급한 적 없었다.
그런 사위는 이제 떳떳하게 내 비지네스로 성공했다는 자부심에 장모를 싫어하고 무시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표면화됐다.
“영아년 바탕은 좋아서?”
영란이 쏴붙였다. “그딴 년을 누가 데려다 엇다 써 먹어!”
“니 동생이다. 동생 놓고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그녀의 모친이 점젆게 타일렀다.
“허이구, 차암! 지금 오서방 말 못 들었어? 가게 하나 나온 거 인수해서 그걸 미끼로 영아년 시집을 보내자 하잖아! 지금 무슨 생각하는데, 엄마는? 응?”
“그렇게까지 처절하지 않다.”
“그년 나이가 서른, 몇이야, 서른 셋, 넷? 자기?”
운진은 금방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저었다. 개인 신상으로 확대하지 말라고. "서른여섯."
“여자 나이 서른여섯이 적어? 나 스물일곱에 갈 때도 얼마나 힘들었어. 만일 엄마가 하자는 대로 했으면, 나 아마 지금까지 시집 못 갔을 거야.”
영란의 입에서 '시집' 간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운진의 낯이 뜨거워진다.
이 집에 아직 있는 그 놈의 풀장 때문에 결혼까지 이어진 해프닝은 지금도 그의 얼굴을 뜨거워지게 만든다.
영란이 운진의 코 앞에서 몸을 휘딱 뒤집으며 보여주었던 사타구니 때문에.
물에 펑 젖어 여자의 성기 모양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삐져 나온 음모까지 구경시켜 준 때문에.
그리고 곧 이어진 무작위 데이트 때 그녀의 육탄돌격을 전혀 사양 않고 받아들인 고의적 실수 때문에.
숙희와는 달력 낱장수로 일년 가까이 만나곤 했지만 그녀의 하체 구경은 커녕 키쓰도 안 했었던 망설임 때문에. 아니.
사실 그는 숙희를 잊으려고.
그리고 그녀가 행복을 찾아 더 나은 남자를 만나기를 바라며 영란을 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여자를 뇌리에서 지우려고 미친 놈처럼 일에 매달렸었다.
그런데 처갓집이란 데는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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