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아내가 도착할 때까지 형록의 진의를 확실히 알아놓자 해서 말을 더 시켰다.
“야, 니 눈에 내가 처갓집살이 하냐? 허, 자식, 자존심만 남아서. 잘 생각해. 잘 생각하고, 좀 있으면 우리 집사람 나오는데. 생각 있으면 말해. 다리 놔 줄께.”
“예? 다리요? 누구랑요. 형님 처제랑?”
“그래.”
“아, 정말 왜 이러시나, 형님! 그만해요, 예?”
“야, 내 보니깐, 처제가 너한테 맘이 있어.”
“또! 한번만 더 해요, 그 말. 나 당장 그만둘 거요!”
“노티스(Notice)도 없이 그만둬? 응, 잘해 봐. 그렇게만 해.”
“그러니까 처제 얘기 그만해요, 진짜!”
운진은 형록이 펄펄 뛰는 걸로 봐서 처제하고는 안 될 것 같았다.
형록의 기색이 보통 싫어하는 게 아니다.
운진은 사무실로 들어와서 영란에게 전화를 또 했다. 가게에 나오지 말라고 그러려 했는데 처제가 받아서는 대답했다.
언니 이미 집에 없다고...
운진은 금방 달려온 아내더러 형록이를 제부감으로 자세히 보라고 했다.
그녀는 그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정말 옆에서 민망할 정도로 그를 자세히 지켜보는 것이었다.
“저놈 그럭저럭 십년이지? 하여튼, 리꺼 스토어 꾸릴 줄 아니까, 당신이 친정에 말해 봐. 내가 가게 하나 봐 놓은 거 있거든. 그걸 사촌처남보고 뒷조사 하라고 시켜서 건물까지 인수하면 렌트비로 건물은 건진다구. 처제도 그럭저럭 장사는 할 줄 아니까. 둘이...”
운진의 그 말을 듣고 영란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골돌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알았어."
그날 저녁 영란은 친정을 들렀다.
영아를 시집 보내야겠는데, 못 해도 가게 하나는 차려줘야겠다고 오서방이 그런다고 말하니 친정아버지는 찬성하는데 친정엄마가 펄쩍 뛰며 사위를 욕해댔다. 그까짓 돈 몇푼에 언니에게 두들겨 맞게 만든 형부란 놈이 이젠 처제를 쫓아내려고 병 주고 약 주는 거라고 길길이 뛰었다.
그리고 가게에 일하는 놈에게 어떻게 시집을 보낼 생각을 하느냐고 화를 냈다.
그러나 그 정도로 갖고는 큰딸을 못 이긴다.
영란은 되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가게문 닫는 대로 친정집으로 와서 저녁 먹으라고 했다.
그 전화하는 모양새가 보통 간드러진 게 아닌 것에 친정부모는 어안이 벙벙했다.
둘이 사는 것은 단지 아이들 때문이라는데.
그리고 이번 사진건으로 둘이 끝날 줄 알았는데.
큰딸이 전에 없이 사위에게 전화를 해서 자기 자기 해가며 네 그래요 꼭 와아 네 네 빠이이 하는데.
친정엄마라는 이가 까무러칠 뻔했다.
딴 여자사진 보고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한 딸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 딸이 남편과 통화한 전화에 대고 신혼 때 보다도 더 간드러졌다.
영란이 냉장고에서 고기도 꺼내고, 김치도 지지고, 마침 전에 사다 놓은 당면으로 잡채도 하고, 부지런히 돌아가는 것을 보며 노친네는 고민에 빠졌다.
아냐, 그럼? 쟤가 그 인간을 내쫓고 가게를 우리 영호에게 넘겨주려고 한 게 아냐?
친정엄마란 이가 남편에게 속삭이니 친정아버지 최 장로는 헛기침만 남발했다. 말아먹을 일 있나?
그리고 그 친정아버지는 큰딸이 부모더러 저는 남편 오도록 기다릴 것이니 먼저 저녁 드시라 하는 것에 흐뭇해 했다.
최 장로는 사위가 참 자랑스럽다.
'성인군자가 따로 없지. 암만 내 딸이지만 영란이가 웬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몸을 함부로 굴렸는데. 알고도 묵인하고 살아주는 건 지, 아니면 아직까지 모르고 사는 건 지. 입도 무겁고 일 처리도 잘 하고... 그저 제발 둘이 이대로만 살아준다면 한이 없겠는데.'
사람은 자꾸 입방아를 찧어서 조용한 일도 시끄럽게 만드는 버릇들이 있지않은가?
최 장로가 그렇다.
그는 딸과 사위 사이에 무슨 일만 나면 그저 사위 편만 두둔하고 나서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그러그러한 딸과 살아주는 것이 고맙고 땡 큐라서이고.
둘째는 직접 운영하다가 사위에게 넘겨준 술가게를 행여 식구들이 손을 댈까 봐, 행여 말아 먹을까 봐 두려워서이다.
그는 그 이유들 중 큰딸의 부정이 언제고 밝은 해 아래 드러날 것에 늘 조바심한다.
그는 사실 입이 간질간질해서 못 견딘다.
그 일이 밖에서 남의 입을 통해 밝혀지고 난리 나느니 차라리 집 안에서 미리 밝히고 수습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또한 명색만 장로인 이가 다른 여자와 잠깐 한눈 팔았다가 사위에게 들켜서 들어앉고는 전전긍긍하는 것도 있다.
이래저래 마누라와 장인이 한 사내에게 약점투성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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