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시반에 비싼 꼬냑 한병을 들고 온 사위를 장인은 반기는데 장모가 시쿤둥하게 대했다.
영란이 둘의 밥상을 다시 차려 같이 먹으면서 남편에게 계속 말을 했다. “오늘 매상 괜찮았어요? 애들은 지들끼리 자요. 내가 글쎄, 전화로 기도 해주고 자장가 불러주고 했다니까? 영아년이 집에 가서 밥 해서 다 먹였대요. 잡채 내가 한 건데, 맛있어? 와아, 이 꼬냑 맛있다.”
그리고 영란이 남편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며, “자기, 우리 가게 보통 때는 아홉시, 주말에만 열시, 그렇게 해요, 응? 이제 우리가 뭐 한푼이라도 더 팔아야 먹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당신 몸생각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렇게 하자고 졸라댔다.
“나야 뭐 좀 일찍 끝나면 좋지, 뭐.” 운진은 찬성도 반대도 아닌 답변을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 여자가 또 웬 바람이 불어서 남 생각해 주는 척 하나?’ 하고, 그 진의를 궁금해 했다.
하긴 영란이 친정에 와서 큰소리 치는 데에는 다아 이유가 있다. 지금의 가게가 그렇게 번창한 것은 원래부터 그랬던 가게를 인수한 것이 아니고, 남편이 머리를 잘 써서 물량도 늘이고 매상을 늘인 것이다...
이야기인즉슨, 남편은 신혼 초부터 따로 아파트를 얻어 나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큰집에 많은 빈 방들을 놔두고 부득부득 우겨서 살림을 났다.
처음 남편이 가게에 나갔을 때는 친정부모의 가게에서 생활비 받고 처갓집 일을 한 셈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아버지가 얼음판에서 미끄러져 거동이 불편해진 이후로는 모친이랑 같이 가게를 경영해야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장모와는 한가게에서 일 못 한다고, 차라리 다른 가게나 다른 일을 찾겠다고, 손을 떼려 했다.
당시 영란은 첫딸 챌리가 아장아장 걸을 때였어서 가게에 나갈 수가 없었다.
남편은 챌리를 장모의 손에 맡기려 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말은 부드럽게 해도 고집이 머리로 벽을 뚫고 나가는 그런 성미라, 장모가 처음 봤을 때부터 안 좋게 대했다고 평생 안 보려 했다.
그래서 남편은 다른 가게를 물색하러 다니고 친정 동생들이 덤벼들었는데, 그것들이 얼굴만 익힌 도둑들이었다.
남동생 영호는 도매상으로 물건하러 간다고 돈을 달라 해서는 반은 떼어 먹었다.
여동생 영아는 매상에서 현찰을 훔쳤다.
순식간에 가게가 적자에 시달리고 물품 대금으로 발행한 수표는 부도나서 현찰로 맞바꾸기 전에는 물건을 못 받았다. 게다가 세일즈 맨들이 영호의 질 낮은 인간성에 혐오를 느껴 미스터 오가 아니면 일체 거래를 않겠다고 통고를 했다.
모친이 영란에게 사람들이 사위를 찾는다고 연락했을 때, 남편은 싸게 나온 술가게 하나를 잡아 놓고 온동네 사방으로 돈을 구하러 다니고 있었다.
그는 부모에게 손 벌리면 얻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가 그 가게를 찍고 매상 체크에 들어갔는데, 처갓집 가게에서 일할 때 소위 매니저로 행세했던 그에게 세일즈 맨들이 미스터 오가 새 가게를 하면 얼마를 사든 좋은 가격에 물건을 대주겠다고 환영했다.
그 때 영란이 한 일은 아는 복부인 한테서 싼 이자로 남편에게 돈을 빌려준 것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 가게를 인수해서 열었다.
그 때부터 남편은 아침 아홉시에 열면 밤 열한시에 닫았다. 열네시간을 스트레이트로 장사한 것이었다.
그 당시 남편은 둘째를 낳고도 아이 얼굴 들여다 볼 여유없이 그렇게 뛰었다.
남편은 하루 종일 가게에 붙어있었고 한눈을 안 팔았다.
영란은 자리 잡을 때까지라며 남편이 건네주는 생활비로 살림을 살았다. 당시 비록 방 두칸짜리 아파트였지만 영란은 그 당시가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친정집 술가게가 결국 도산지경에 이르렀다.
남편은 처갓집 술가게를 끝끝내 도와주지 않았다.
그는 대신 건물만 헐값에 넘겨 받고 그 돈으로 가게를 다시 살려보란 아이디어만 줬다.
남편은 장인에게 대놓고 처남과 처제를 자르고 차라리 남을 쓰란 말까지 했다. 그러나 장인은 장모 무서워서 그렇게 못 하고 내버려두었다.
남편은 작은 가게를 한지 딱 3년 만에 지금의 집을 살 수 있었다. 그 때 그는 영아를 데려다가 아이들을 보게 하고 영란이 그 가게를 사람 하나 데리고 한 2년 경영했다.
남편은 그 때 형록이라는 미국에 갓 입국한 총각을 세워놓고 양쪽을 뛰었다.
영란은 가게 둘을 다 소유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돈 빌려서 차린 가게를 많이 남기고 팔았다. 건물은 놔두고 가게 판 돈으로 빚을 갚았다. 영란이 그 돈은 급히 갚지 않아도 된다고 누차 말했건만 남편은 이자 나가는 게 싫다며 갚아 버렸다.
부부는 그 때 그 일로 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게를 팔 때 남편이 아내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운진은 남의 돈이라 늘 부담이 되어 빨리 갚으려 했고, 영란은 천천히 갚아도 되는 돈인 줄을 알았기 때문에 가게를 얼른 안 팔고 돈을 좀 더 만져보고 싶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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