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닷새째.
숙희는 모처럼 만에 활짝 개인 날씨를 놓치기 싫어 나들이를 했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자니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약해질 거라고 판단한 태풍은 내륙 지방으로 들어와서 폭우만 동반하고 죽을 줄 알았는데.
그 스톰은 펜실배니아 주를 북서로 관통하고 5대호의 하나인 이리(Erie)호에 가까이 가서는 캐나다에서 내려온 한랭 전선과 부딪혀 다시 그 파괴적인 폭풍으로 살아났다.
흔히들 죽어가던 풍속이 물 위를 만나면 미끄러워서 다시 가속된다고 한다. 그 폭풍은 갑자기 그 진로를 서쪽으로 바꿔서 물 건너 디트로이트 시를 때리고 미시건주를 지나 캐나다까지 가서 비를 엄청 퍼붇고는 기세가 죽었다고.
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결같이 태풍이 육지에 들어와서 죽을 거라고 예측했기 때문에 어디서건 태풍에 대한 비상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강물이 범람해서 집들이 잠기고 옥수수 농사도 모두 망쳤다.
자연은 인간들에게 전혀 예측 못한 타격을 주었던 것이다.
샤핑 몰 안에 있는 래디오 쉑(Radio Shack) 가게에서 틀어놓은 TV 뉴스에 피해 당한 지방을 보도하고 있었다. 공중에서 찍은 광경은 온통 흙탕물이었다. 사람들이 물에 잠긴 집 지붕 위에 올라앉아 손을 흔드는게 헬리캅터 카메라에 잡혔다.
숙희는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쓰게 웃었다.
‘물에 갇혀서도 여유를 보일 줄 아는 미국인들...’
그녀는 래디오 쉑 가게 앞을 떠나 로드 앤드 테일러(Lord and Taylor) 백화점을 찾아갔다. 같은 물건이라도 숙희는 일부러 이런 고급 가게를 찾는다. 여기 값이 다른 백화점에 비해 훨씬 비싼데, 설령 같은 메이커이고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비교하면 뭔가가 달라도 달랐다. 때로는 바느질이 달랐다.
그녀는 옷 진열대 사이를 다니며 혹시나 해서, 만일을 생각해서 바닷가에 가면 입을 만한 얇은 겉옷을 골라봤다. 휴가가 끝나기 전에 제 정신 갖고 바닷가를 한번 더 다녀오고 싶어서.
‘공희네는 여름에 바닷가에라도 갔나?’
그리고 그녀는 더 외로워지기 전에 동생네 애들과 어울려서 어디라도 갔다와야겠다고 생각을 굳혔다.
이제 십일월의 추수감사절 때 이전에는 연휴가 없다.
앞으로 나흘 후면 휴가가 끝나고 출근을 해야 한다.
‘아니면, 토요일날 칸도 뒤의 파크에서 바베큐나 해 먹자 할까? 때는 조금 늦었지만...’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철 지난 여름옷들을 쌓아 놓고 쎄일하는 진열대를 지나치는 숙희를 불러세우는 음성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말하는 음성은 젊은 여자의 것이었다.
숙희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난 쪽을 돌아다봤다.
“오, 난 또 누구라구. 설이구나?”
키가 작달막한 설이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꾸뻑 인사했다.
그 옆에는 머리에 무스를 잔뜩 발라서 하늘로 찌른 청소년이 서 있다.
그도 설이만큼 키가 작다. 그런데 숙희에게 낯이 익다.
“인사해!”
설이가 팔을 툭 치니 그 남아가 허리를 엉거주춤 구부리면서 인사를 했다.
“아녀해세요?” 하는데, 발음이 형편없다.
“응, 하이!” 숙희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제 브라더예요.” 설이가 말했다.
“오, 그래애! 브라더. 남동생이 있었지! 마잌(Mike)?”
“네. 기억하세요?”
“그러엄! 내가 니네 둘을 허시 팍(Hershey Park)에 데려갔었는데?”
허시 팤이라면 펜실배니아 주에 있는 쵸코렛 회사의 놀이공원이다. 말을 해 놓고 숙희는 곧 후회했다.
허시 팤 하니 지난 일이 되살아나고 애써 지우려 했던 기억들이 다시 괴롭히기 시작할 것이다.
“엄만 푸드 코트(Food Court)에 있어요.”
“엄마도 샤핑 나오셨니?”
“네.”
숙희는 약간 궁금해졌다.
설이가 처음 만났던 날 엄마가 이제 집에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숙희는 설이에게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물으려다 그만 둔 기억이 났다.
‘글쎄, 운서언니를 만나서 뭘 어떻게 할까? 안 만나는게 좋겠지...’
아이들을 떼쳐 놓으려는 궁리를 하는데 그 애둘 중 하나의 셀폰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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