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pt.1 6-1x051 겨울 회상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30. 04:44

겨울 회상

   이튿날.
가게를 찾는 손님이 뜸할 시간, 운진은 가게 뒷방에서 신문을 읽다가 누이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글쎄 누굴 만난 줄 아니?” 
   운서는 평소 그녀 답지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숙희를 만났다?”
운진은 눈을 감았다. ‘왜 또 이러시나아! 십할, 잊을 만하면 이상하게 자꾸 연결되네?’
설이가 전화로 알려줘서 오션 씨티를 달려갔다 온 자가 시치미를 뗀다.
   “전에부터 멋쟁이였지만 지금도 보통 멋쟁이가 아니더라구. 니가 걔를 봤어야 되는 건데.”
   “내가 봐서 뭘 어떻게 하라구요.”
   “뭘 어떻게 하라는 게 아니라. 어떻게도 못 하지, 뭐, 지금 와서.”
   “근데, 왜 갑자기 전화해서 이상한 말을 하시는데요, 누님?”
   “아니, 그게 왜 화낼 일이니? 이상하다, 너?”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요! 쓸데없이...”
   “우리 설이가 이번에 취직한 그 회사 부사장이랜다. 차도 벤즈만 타고 다니고.”
   “부사장은 무슨 부사장. 그냥 바이스 프레지던트인 거 갖고.”
   “너 어떻게 알어! 너 혹시 만나고 다녀?”
   “미쳤어요? 꼭 말도 말썽날 말만 골라서 해요, 차암나아!”
   “만난 게 아니면 어떻게 아냐니까?”
   “누님 딸, 설이가 얘기합디다! 원, 말씀을 해도. 일부러 그러시나, 아님 속이 원래 꼬이셨나.”
운진은 조카가 어차피 누이의 딸인데 시치미 뗀다는 자체가 스스로에게도 우습다.
   “말 다 했어, 너, 지금?”
   “그만 둡시다, 누님. 장사해야 하니까, 그만 끊읍시다, 녜?”
   "얘! 잘 생각해 봐아! 아깝드라, 난.”
   “어허! 끊읍시다!” 
운진은 수화기를 사정없이 내리꽂았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운진이 먼저 지레 화를 내고 누이의 말문을 막았다. ‘설이의 말을 듣자마자 오션 씨티까지 갔다온 주제에, 짜식, 화는...’
운진은 뒷방에서 가게로 나오면서 하마터면 형록이한테 담배를 한대 달라할 뻔했다. 
아니면, 담배가 가게 안에 지천으로 있는데 한 갑을 꺼내 열어도 뭐라 할 사람 없다. 
담배들은 머리 위의 진열대에 빼곡히 찼다. 
예전에 즐겨 피우던 말보로 약한 것 한갑을 형록이 몰래 꺼내는데 마침 단골 하나가 들이 닥쳤다. 
   “Hey, Marlboro lights box, please! (헤이, 말보로 라이츠 밬스, 플리이스!)” 하고, 그가 소리치는 바람에 운진은 손에 들었던 담배를 얼른 건네주었다.
형록의 손이 자동적으로 머리 위의 담배를 잡으려다가 운진을 보고는, “어떻게 아셨어요?” 하며, 의아해 했다. 그가 운진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었다.
운진은 핑게댈 게 없어 거짓말을 했다. “어, 들어오는 걸 봤어, 마침.”
   “예? 눈도 밝으시네, 그 땐.” 
   형록이 그대로 넘어갔다. “나도 못 봤는데.”
담배값을 받고 난 형록이 운진을 째려봤다. “형님, 혹시 담배 피려구 찾은 건 아니죠?”
   “글쎄... 도로 피울까?”
   “어허, 왜 이래요? 나 보고 끊으라고 그렇게 하드 타임을 주던 냥반이? 참아요, 참아!”
   “만사가 좃같이 돌아가니 도루 피우고 싶다.”
   “그래도 참아요. 어떻게 끊었는데 또 시작한단 말유. 아, 내가 그 신경질을 다 받아주고 끊었는데. 안 되지. 다시 피다니!”
   “그렇지, 그래.” 운진은 민망해서 클클 웃었다. 
금연하려고 하는 사람마다 다는 아닌데, 혹간 담배를 끊으려 하는 동안 신경질을 내는 남자들이 있다. 
운진이 담배를 끊으려 했을 때 형록이 그의 신경질과 짜증을 다 받아주었었다.
운진은 손만 뻗으면 담배를 집을 수 있는데 손가락만 까불다가 '에잇, 말자!' 하고, 치웠다.
특별한 이유로 끊고는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 있는 이유 때문에 도로 흡연을 시작하는 이들이 있듯이 근 20년 만에 다시 듣기 시작하는 숙희라는 이름이 운진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숙희와는 약 1년여를 남들의 눈 때문에 숨죽이며 사귀었었나.
그 때는 둘 다 바보같이 왜 그랬는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그 때 그 여자가 먼저 하나 되자고 했을 때 응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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