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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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30. 04:45

   어느 해 겨울, 바다에서 해뜨는 것을 보러 가기 위해 숙희는 새벽에 집 앞에서 떨며 운진을 기다렸다. 
암만 기다려도 그가 오지를 않아 무슨 일이 났나, 깜빡 잊고 자나, 약속 장소가 집 앞이 아닌가,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있는데, 시커먼 덩어리 하나가 소리도 없이 골목을 들어오는 바람에 숙희는 억! 하고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며칠 전에 그와 같이 본 영화의 외계인의 침입처럼 비행 물체가 소리도 없이 골목에 내렸나. 
어떻게 해! 
그녀는 도망을 하면서도 그 시커먼 물체를 보니 자동차다. 캄캄한 골목이라 얼른 식별이 안 됐지만 자세히 보니 추럭이다. 더 자세히 보니 운진의 고물 추렄이다. 
차가 불도 안 켜고 차의 시동도 안 걸고 소리도 없이 숙희 앞에 와서 멎었다. 
숙희는 운전석쪽으로 달려가서 마침 차창을 내리는 그의 면상에 한 펀치를 날렸다. 
그가 골목이 떠나가게 고함쳤다. “아야! 남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왜 때려요!” 
   “왜 소릴 질러요!” 
숙희는 얼른 집 쪽을 뒤돌아봤다. 집에서 듣고 모친이나 누가 내다보면 어쩌나 하고. 
가만히 지켜보니 집쪽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숙희는 차를 끼고 돌아 옆자리에 올라 탔다. 차의 시동은 꺼져 있는데 차 안은 훈훈했다. 
숙희는 에어 나오는 곳에다 손을 대어보았다. 아마도 그는 그녀네 집 가까이 오니 일부러 엔진을 끈 모양.
차는 계속 소리없이 굴러 나머지 골목을 다아 빠져 나갔다. 
그런 다음 그가 발동을 걸었다.
   “이거 받아요! 에이, 씨이!” 그가 손을 내미는데 내려다 보니 커피컵이었다.
   “어, 커피네?” 숙희는 얼른 커피컵을 받았다.
   “이거 사 오느라 늦었는데 왜 때리기부터 해요! 여자가!”
   “오, 쏘리!” 숙희는 그의 뺨을 어루만져 주는 척 했다. 
   “누군 추운 데서 기다릴 걸 몰랐을까 봐, 말도 안 들어보고, 이씨이!”
   “난 하도 추워서, 화가 났어요. 호호호!”
   “여기 도낫두 있는데…”
그가 내미는 걸 받아보니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크림 도넛이다.
   “얼마나 기다렸어요?” 그가 조금 가라앉은 말끼로 물었다.
   “한 시간!”
   “오. 금, 화도 나겠네. 난 내 나름대로 부지런을 떨었는데. 근데, 나중에 없어진 걸 식구가 알면 난리 날 텐데요? 우리 헛 약은 것 아니요? 나야 괜찮지만.”
   “동생이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어요. 동생을 믿으니까.”
   “아아, 좋은 동생을 두셨네. 난 동생이 없어서, 좀 뭐랄까, 가끔 꿀릴 때가 있었어요.”
   “어머, 왜요? 왜 꿀려요?”
   “아무래도 둘이 먹고 뎀비면 내가 지죠. 내가 특별히 쌈을 잘 하는 것도 아니구.”
   “쌈을 왜 해요, 그러니까. 안 하면 되죠.”
   “아이구, 참. 한국에서 안 살아본 사람처럼 말하시네. 아, 우리 학교 다닐 때 좀 싸워요? 참, 여학생은 안 싸우나 보죠?”
   “여학생도 싸워요.”
   “그럼... 싸워봤어요?”
   “그럼요. 내가 이래뵈두 흑띤거 몰랐죠?”
   “흑띠? 녜에? 와아, 어쩐 지! 조심해야겠는데? 하긴 아까 한방 들어오는데, 좀 다르더라니. 어이구, 조심해야겠네요? 난 무띤데.”
   “그런거 같더라고요. 무띠 마이너스.”
   “뭐라고요?”
   “여자가 한방 들어가는걸 못 막는 걸로 봐서 그렇겠다구요. 순진하시긴.”
   “칭찬인가, 놀리는 건가. 혼동되네.”
   “호호호! 하하하!”
   "아무런 방비도 안 한 남자를 한방 때려놓고는 그렇게 좋아요?"
   "방어도 못하고 여자한테 맞은 남자가... 바보지."
   "뭐, 뭐요? 바보?"
   "아니. 바보 같이 착한 남자라구..."
   "완전 병 주고 약 주고."
   "호호호!" 숙희는 정말 재미있어서 맘 놓고 웃어제쳤다.
오운진이란 사내가 진짜 어떤 자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최정방에서 밤에 넘어 온 북한군 하나를 맨손으로 분해 한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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