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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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30. 04:46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집주인이 심부름을 시키는게 아니라 따로 차린 식탁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미스터 오는 이것저것 준비해 주느라 밥도 못 먹었지? 자, 이리 와서 들라구, 응?” 
그래서 집주인 장로 양반의 손짓을 따라가 보니 넓직한 식탁 위에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운진이 미적거리고 섰는데, 아까 그 여자가 밥공기가 담긴 쟁반을 부엌에서 가져왔다. 
밥공기가 식탁에 옮겨 놓이는데 세개였다.
   “빨리 와, 이 사람아! 젊은 사람이 왜 이리 숙기가 없어!” 집주인이 재촉했다.
운진은 마치 죽으러 끌려가는 소처럼 움직여서 식탁으로 갔다. 집주인이 오라고 손짓하는 자리에 앉으니 아까부터 자꾸 보이던 그 여자가 집주인 옆에 앉으며 운진을 정면으로 봤다. 
운진도 술기운을 빌어 그 여자를 똑바로 쳐다봤다. ‘예쁜 얼굴이네...’
   "어서 들어, 이 사람아!"
집주인의 권유에 운진은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반찬을 별로 집지 않고 국물과 가까이 놓인 콩나물만 집어먹었다. 그녀와 젓갈질이 엇갈리기 싫어서였다.
그런데 그녀가 반찬 이것저것을 그녀의 젓가락으로 집어서 운진 앞의 종이접시에 놓는 것이었다. 그녀가 갈비 구운 것도 두어점 올려놔 주었다.
운진은 숙희씨를 얼른 생각하다가 그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남의 여자가 제 쓰던 젓가락으로 반찬을 옮겨주면 입 닿은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숙희씨와는 키쓰는 커녕 반찬나누기 같은 것도 안 하는 사이인데.
   성렬이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는데 운진은 등을 돌린 채 밥만 먹었다. 성렬이 그의 독특한 깐족거리는 말투로 사회를 보며 한사람씩 자기 소개를 시켰다. 
한사람씩 누구에게인지 모르게 자기 소개들을 하는데, “저기 아까부터 볼이 미어져라 밥만 축내는 우리 미스터 오, 자기 소개 좀 하시지!” 하고, 성렬이 운진을 불렀다. 
다른 사람들은 마이크에 대고 이름과 나이 그리고 하는 일을 각자 말했는데, 운진에게만큼은 성렬이 질문을 해댔다. 
   “이름! 빨리빨리!”
   “오운진.”
   “오웬쥔! 나이!”
   “스물여덟! 아니, 스물... 일곱.”
   “우우. 어쨌거나 나이배기! 직업!... 있나? 없지, 아마?”
   “...” 
   운진은 화를 내기 싫어 벽을 쳐다봤다. ‘놀구 있네, 십할놈!’
   “아니, 자기의 직업을 몰라 저렇게 생각해야 돼? 무직! 언제 미국에 왔다?”
   “2년전. 3년차.”
   “크크크! 뽜브(F O B), 으응?”
뽜브란 Fresh Off the Boat 즉  미국에 갓온 사람을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성렬이 그 딴에는 쫑코라고 먹이는 모양인데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아이고, 스물여덟인데, 언제 졸업해서 언제 취직하고 언제 장가 가. 큰일났네! 누구 노총각 하나 구제해 줘야겠는데. 여기 아무도 없네에! 큰일났어, 미스타 오, 응? 쯧쯧쯧. 자, 그 벌로 노래!”
그런데 두 아가씨가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그리고 그 두 여인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어넘어갔다. 
   "무슨 질문이라도?" 성렬이 두 여자에게 마이크를 겨냥했다.
   "구제하라며요?" 한 여자가 말하는데 교회 반주자 같았다.
   "나도 노처녀 소리 듣는데, 상부상조합시다." 다른 여자가 조그맣게 말했다.
성렬은 멍쪄갖고 입이 헤 벌어졌다. 
미스터 오를 쫑코 먹이려고 한 말인데 두 여자가 응답을 했다.
운진은 성렬의 놀리는 말이었지만 그의 실정이 정말 그랬다. 
나이 스물일곱에 이제 2년차 대학을 다니는데 특별히 전공을 살리는 것도 없고 취직을 하자니 뭘 할 지 막막했다. 삼촌의 꽃가게에 일하는 것은 알바이트로는 그런대로 시간조절을 하면서 학교를 다닐수 있지만 직업으로는 수입이 형편없었다. 그런 데서 일해 갖고는 방도 못 얻고 밥도 못 먹는다. 
겸사겸사 울화통이 터지는 차에 술기운도 돌겠다... 해서. 그는 목이 터져라고 아침 이슬이란 노래를 불러제쳤다. 
운진은 앞이 막막한 심정에 그리고 술기운에 울화통을 몽땅 마이크에 쏟아부었다. 
   “---나 이이이제 카노라아! 저 거찐 쾅야아에! 써러움 모오두 퍼리고오 나이이제 가아노오라아아아!”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그 중 유독 오오오! 하고, 야유는 절대 아니고 튀는 음성으로 소리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운진은 침으로 범벅된 마이크를 성렬에게 넘기고 식탁 의자로 돌아가 털퍼덕 앉았다. 
이 집 딸이 와아아! 하고, 운진에게 대고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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