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숙희가 최 장로댁에서의 일에 대해 풀어져서 다행이다 싶어 안심하고 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녀에게서는 전화가 안 왔다...
교회에서는 성탄절 찬양 준비로 바삐 돌아갔다.
운진은 아무리 누가 불러도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숙희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안 왔다.
그는 감히 전화로 안부 정도 물을 엄두도 못 냈다. 숙희 그녀네 집에서 운진을 만나는 것을 반대하는데 불쑥 찾아가기도 뭐 하고, 또 그랬다가 더 악화될까 봐 참았다.
그러다가 그는 그녀가 성탄절이라 교회를 나오면 잠깐 만나거나, 아니면, 집 동네에서 볼 수 있으려나 하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골목을 배회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는 요 핑게 조 핑게로 성가대를 피하다가 마지막 연습 때 최 장로에게 붙잡혔다.
숙희는 그녀대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운진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은행장이 시키는 대로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했다.
연말연시라 기업체들은 한해 마무리와 함께 이듬해도 지속적인 사업 연결을 위해 선물공세와 심지어 현찰이 든 상자도 서로 왔다갔다 했다.
그녀는 그런 심부름을 하면서 은행장이 지정한 대상에게는 소위 성상납도 해야 했다. 그런 대상에는 타 은행장도 있었고 연방정부 고위관리도 있었다.
그녀는 파티 같은 데에 불려가서 원치않는 술도 받아 마셔야 했다. 그리고 어떤 파티에서는 어떤 밀실에서 남자들을 앞에 놓고 스트맆 쇼도 해야 했다. 문자 그대로 탁자 위에서 몸을 흐느적거리며 음모로 뒤덮힌 성기를 그들 눈 앞에 가까이 들이대는 그런 서비스였다. 그러다가 가장 많이 돈을 건 자와 어울려서 호텔행도 감수해야 했다.
숙희는 그런 행위를 하며 운진에 대해 양심이 아팠다. 그녀는 그럴수록 운진에게 화가 났다.
남자가 되어가지고, 머리가 터지더라도 한번 쳐들어 오면 될 걸, 뭘 기다리는 거지?
운진이 머뭇거리고 자꾸 달아나려는 이유를 숙희는 물론 잘 안다. 그는 아직 학생이라는 신분이지만 졸업을 앞둔 희망도 없다. 그렇다고 두 세개의 일을 동시에 뛰면서 밥벌이라도 챙기려는 의욕도 없다.
운진 그는 그저 착한 것 빼고는...
어른들 눈에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로 보였다.
설령 그렇더라도 남자가 먼저 달겨 들어와서 똥지게를 지는 한이 있더라도 따님을 먹여 살리겠습니다! 믿고 따님을 주십시요! 이거 하나 할 용기도 없나...
숙희는 그런 섭섭함이 들 때마다 셐스 서비스 상대에게 결사적으로 대했다. 그녀의 그런 일은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아닌 말로 세 탕을 뛰어야 했다. 즉 세명의 다른 남자에게 셐스 서비스를 했던 것이다.
그녀가 녹초가 된 몸으로 귀가한 때는 자정이 훨씬 지난 후였다.
그녀를 태워 온 리무진 운전자가 그녀를 부축해서 들어가게 했다.
그녀는 집 안에 들어서며 입고 있는 밍크 코트를 잡아뜯듯 벗었다. 그 안에서 여기저기 꽂혀있는 지전들이 삐라처럼 날아 떨어졌다. 그 때까지 안 자고 있던 그녀의 가족은 빳빳한 돈들이 카펱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덤벼들었다.
그 돈들은 거의 빳빳한 백불짜리들이었다.
숙희는 그 돈을 밟고 지나갔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지나가도록 멈칫멈칫하다가 다시 덤벼 들었다.
그들은 그녀가 어디서 뭘 해서 그딴 돈을 마구 뿌리나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녀가 그런 돈을 그렇게 뿌리고는 기억하지 않는 것만 고맙고 신기해했다.
그녀는 욕실에 들어가서 변기를 끌어안았다.
먹기 싫어도 꾸역꾸역 받아 넘긴 술은 힘 하나 안 들이고 다 넘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욕실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쓰러졌다. 문 소리에 그녀는 열지 마 하고 고함을 질렀다.
같은 시각, 운진은 사촌들과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를 하고 있었다.
장소는 친척들 중 집이 가장 큰 축에 들어가는 둘째이모네였다.
특히 정비일 하는 사촌이 우겨서 다 불러 모았다.
운진은 이 사촌동생 저 사촌동생이 술 주는 대로 꿀꺽꿀꺽 넘겼다.
그 자리에는 여자들도 끼어 있었는데, 더러는 사촌들의 부인들이고 운진의 기억에 얼른 모르겠는 교회 내의 여자들도 있었다.
운진은 그 중 한 여자와 눈길이 자꾸 마주쳤다.
그녀는 교회 반주자 강진희였다.
그는 그녀가 누굴 따라 왔을까 하고 궁금했지만 사촌들 중 누구이겠지 하고 말았다. 그는 술기가 오르면서 숙희에 대한 궁금증이 불길한 추측으로 넘어가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그 해의 겨울이 생애 가장 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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