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내친 김이다 하고 말을 이었다.
“딴 남자하고 만나시는 건 다 좋은데요, 황하고는 절대 만나지 마세요. 그 자식 아주 질이 나쁜 놈이라구요. 성격도 안 좋은지 남을 비꼬고 나쁜 소문만 퍼뜨립니다.”
“아니, 하, 기가 막혀서 정마알? 사람을 뭘루 보고?”
“저를 싫다 하시니까 보내드리는데요. 만일 황하고 만나신다면 내가 말릴 거예요. 제발 황 아닌 다른 남자 만나세요. 그게 내 부탁이예요.”
“운진씨!”
“녜, 말씀하세요.”
“제 부탁도 하나 들어 주실래요?”
“녜.”
“제가 지금요, 운진씨를 딱 한번 때려주고 싶은데, 부탁해도 될까요?”
“그, 그게 말이죠. 그렇지 않아도 김형이 얼른 가서 매맞으라고 합디다. 근데요, 우린 어차피 끝난 마당이니까, 아뇨, 저 그냥 갈 겁니다. 때리고 싶으면,..”
그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숙희가 발로 운진을 걸어 넘어뜨렸다.
순식간의 일이라 운진은 보기좋게 큰 댓자로 찬 잔디밭에 나가 떨어졌다.
‘뭐 이런 여자가! 아, 십할, 쪽팔리네!’
운진은 일어나 앉았다가 뒤도 안 돌아보고 거기를 떠났다. ‘황새끼한테, 씨발, 당해라! 여자가 운동 좀 했다고 아무나 막 때리냐?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엄마 뭐라 할 거 없네!’
운진이 추렄을 난폭하게 출발시키며 그 집 앞을 떠났다.
숙희의 계모는 찾아온 사내를 냉정하게 맞았고, 게다가 딸이 발차기로 쓰러뜨리는 것을 보고는 우습다 했다가 조금 미안한 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 미안해 하는 마음이 딸을 붙잡지 못 했다.
운진은 숙희가 차로 뒤따라 오는 걸 모르고 계속 운전해서 집으로 왔다.
그녀는 그의 집까지 따라왔다.
'뭐야!'
운진은 숙희에게 실망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 보이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아직 있는지 갔는지 내다보지도 않고 샤워하러 이층으로 올라갔다.
샤워를 하면서 창피하고 속이 상해, 운진은 비명 가까이 소리질러가며 노래를 했다.
‘일찍 끝내길 잘 했지, 십할! 만일 결혼해서 살다가 말다툼만 하면 칠 거 아냐? 참 내, 잘 해 봐라. 언 놈한테 걸리나 좀 지켜봐야겠네, 십할! 황새끼가 걸리면 걸렸지, 내가 무슨 오지랖이다가 여자한테 터지냐!’
그가 샤워를 마치고 내려오니 모친이 수화기를 건네주었다. “어떤 여자가 너 나오도록 기다린다.”
그는 모친의 손에서 수화기를 나꿔챘다. "여보세요?"
"나예요." 숙희였다.
화 났어요 하는 그녀의 음성은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장난해요?”
운진은 수화기를 쾅 하고 내려놓아 끊었다. ‘보자보자 하니까 이젠 이 여자가 갖구 놀아, 에잇!’
전화기가 또 울었다.
그의 모친이 받더니 아까 그 여자라고 건네주려 하는 걸 운진은 나꿔채 끊어버렸다.
그 이후로 그녀에게서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았다...
운진은 핑게 김에 교회를 바꿔버렸다.
아예 다른 동네에 있는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 교회에서는 혼자 나오기 시작하는 청년을 반가히 맞아주었다.
그는 첫 참석일부터 청년회와 만났다.
그 교회는 교인들 분위기가 조용하게 여겨졌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교회에도 처녀들이 제법 많았다. 그가 두번째 주일날 예배 보러 가니 몇몇 여성이 반가히 인사를 건네왔다.
운진은 혹간씩 숙희를 만날 겸 가곤 했던 마켓도 일부러 다른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 후 한번인가 숙희의 혼다 차를 집 앞 길에서 마주쳤는데, 운진은 모른 척하고 우회전 해서 지나쳤다. 아마도 그녀가 빵 하고 경적을 울린 것 같았다.
'아무리 여자가 무술을 배웠다고, 어디 남자를... 내가 지를 뭐 어떻게 해보려고 덤빈 것도 아니고, 얘기 좀 하자고 갔는데. 참 내. 이쯤에서 그만 둡시다!'
운진은 무술 좀 배웠다고 껍쭉대고 툭 하면 써먹으려는 족속들이 참 가소롭게 여겨진다. '조심하쇼. 그런 식으로 까불다가 진짜 무서운 사람한테 걸려서 혼날 테니!'
운진은 김흥섭인가 중위 출신도 정말 까불면 따끔한 맛 좀 보여주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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