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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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31. 03:15

   최 장로댁에서의 풀사이드 파티 후 약 반달이 흘렀다. 
운진은 숙희에 대한 궁금증이 흐려질 무렵, 또 하나의 만남을 가지기 시작했다. 
영란 그녀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운진이 새로 나가기 시작한 그 교회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운진은 그녀를 처음 마주친 순간 능청떨지 않았다. 
영란은 영란 대로 수줍은 척 혹은 부끄러운 척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식 웃어보였고 그녀는 가볍게 눈을 흘겼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본당 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둘은 찬송가 부르는 차례에서 소프라노 고음과 바리톤 저음이 조화되게 불렀다.
그 두 사람 주위의 교인들이 흘끔흘끔 뒤돌아다 볼 정도였다.
그 날의 예배가 끝난 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필요치 않은 말을 삼가했다. 
두 사람은 손 잡고 그 교회를 나란히 나섰다. 신혼 같지는 않은데 두 남녀가 남들의 눈에 무척 익숙한 사이처럼 보여졌다.
   얼마 되지 않아 그 교회에 소문이 났다. 
새로 나오기 시작한 처녀와 총각이 알고 보니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둘이 다른 교회에서 눈이 맞았는데 소문이 나버려서 조용한 이 교회로 옮겨온 것이라고. 
둘은 구태여 반박하지 않았다. 
누가 둘이 어떤 사이냐고 물었을 때 영란이 사귀는 사이라고 당당히 말할 정도였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먼저 데이트를 신청하나 하는 신경전을 벌이지도 않았다. 둘 다 결혼적령기에 든 나이들인데 섣불리 데이트 하다가 헛소문이나 낼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솔직히 두 사람 모두 낼모레면 서른을 훌쩍 넘게 생겼고 양가에서 은연 중에 눈치를 받고 있는 중이다.
   운진은 영란을 볼 때마다 수영장 생각이 나서 늘 당황하고 우물쭈물했다. 그는 그녀를 마주 대할 때마다 자꾸 못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녀가 그의 코 앞에서 텀블링을 하면서 보여준 물에 젖은 가랑이의 모양이 눈 앞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둘이 한 몸 된 것은 2월 14일 발렌타인스 데이였다.
운진은 영란을 위해 카드와 캔디를 준비했고, 그녀는 그를 위해 몸을 열었다. 아니.
그녀가 깜빡 준비를 안 했다며 그더러 뭐든 원하는 것을 말하라 했고, 그는 서슴없이 키쓰를 했다. 그 첫키쓰가 운진의 추렄 안에서였는데, 최영란이 단도집입적으로 나 원하느냐고 물었다. 
두 성인남녀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만난 장소에서 제일 가까운 모텔에 들었던 것이다. 
그런 후 두 사람은 주기적으로 서로의 몸을 탐했다.

   두 남녀가 옮겨 간 새 교회에서 부활절 칸타타 준비로 부산할 때, 영란이 메조 쏘프라노 독창 하나를 맡게 되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정치였다. 
최 장로네 가족이 이쪽 교회로 참석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쪽 교회에서는 대물주가 왔으니 경사가 났고, 저쪽 교회에서는 부자로 소문난 최 장로네가 말도 없이 갑자기 증발했으니 난리가 났다. 즉 헌금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그녀가 맡은 독창은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부르는 사랑의 고백인데 영란은 열심히 연습에 임했다. 
운진은 그녀가 성가대에서 같이 하자는 것을 휘이 하고 사양했다.
   그 작은 교회가 부활절 찬양을 드린다고 하는 날, 신부 화장처럼 치장한 영란이 프로그램 중의 독창을 불렀을 때 청중은 황홀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박수가 오랫동안 그치지를 않았다.  
최 장로가 운진을 무심하다고 나무랐다. 그리고 그가 늘 그러듯 이번에도 그 교회 성가대 전원을 음식점으로 저녁 식사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오운진군도 한 때 성가대에 올라갔었다는 말이 나왔다. 
영란은 화장을 지우지 않고 식당 안을 누볐다. 
게다가 운진과 영란이 나란히 앉게 되었다. 운진도 정장차림이라 마치 어떤 식을 올린 한쌍으로 보이기에 딱 알맞았다. 
자연적으로 식당에서 영란과 운진을 신랑 신부로 착각하고, 아니면, 예비 신랑신부로 여기고 축하 메세지를 방송했다. 
아마도 어느 신혼 팀이 식사하러 오신 것 같으니 축하해 달라고.
   영란은 당황하다가 역시 어색해 하는 운진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거기에 온 손님들이 모두 박수를 쳐주었다. 
영란은 돌아가며 인사하는 둥 까불었다. 
그녀의 모친이 영란을 잡아끌어 앉혔다.
운진은 그녀의 모친이 몹시 안 좋은 내색을 하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나 둘은 모종의 중대발표를 해야 한다. 영란의 배가 눈에 뜨이도록 불러지기 전에.
식사들이 다 끝나고 그 교회 성가대원들은 최 장로에게 일일히 감사하고 떠났다. 
이제 최 장로댁 가족과 운진 그렇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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