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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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9. 08:16

   영란의 '내가 왜 이 교회에 나오는지 아느냐' 는 말에 운진은 속으로, ‘뭐, 설마 나 땜에 오나?’ 하고, 빠져 나갈 말을 찾았다. 
최 장로가 그런 운진을 한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이보라구. 나두 쟤 땜에 여기 나오는데, 자네가 모른 척하면 울 애가 무슨 꼴이 되나?”
   “아니, 저기요.” 
운진은 알고 지내는 여자가 있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여기서 아무 상관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하다가는 헛소문 나고 숙희씨와 안 좋아질 것 같다.
   “쟤가 자존심이 엄청 쎈 앤데, 자네 말은 듣잖아. 자네가 얼른 달래 줘, 이 사람아!” 
운진은 계속 망설였다.
결국 영란이 홱 돌아서서 가 버렸다.
최 장로가 언짢은 큰기침을 했다.
운진은 그제서야 일단은 저 여자를 달래보는 게 상책이다 싶어 부지런히 따라갔다.
영란은 이미 차에 타고 있었다. 그녀의 차 뷰익 센추리의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운진이 그녀의 차 운전석 쪽으로 다가가니 영란이 차 유리를 내렸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저기 말이죠, 미쓰 최. 이번엔 그냥 양보하세요. 그러는 게 부드러울 거 같애요. 예?”
   “지난 번 부활절 찬양 때 반응이 좋았잖아요. 미스타 오는 내 마음을 몰라요.”
   “알아요. 미쓰 최의 마음 잘 압니다. 그러나 때론 양보도 하시는 게...”
영란이 운진의 말을 잘랐다. “운진씬 비겁한 사람예요. 실망했어요!”
그녀의 차의 유리가 올라가고, 차가 거칠게 출발했다.
   ‘어, 추워. 십할, 뭐야아. 내가 왜 저여자한테 이래야 되지?’ 
운진은 새삼 한기를 느끼며 건물로 향해 뛰었다. 때론 양보도 미덕인데, 그런 것도 모르나? 
그 때 마침 최 장로가 나오고 운진은 꾸벅하고 인사만 했다. 
운진이 연습실에 다시 들어가니 그 새 대원들은 발성 연습을 하고 있었다. 
지휘자가 눈짓으로 어떻게 됐느냐고 물을 때 운진은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십할! 왜 나한테 다들 지랄이야!...

   그 날의 첫 연습부터 테너인 청년회 회장은 음을 제대로 잡지 못 하고 헤맸다. 음이 중간에서 자꾸 틀리니까 연습이 끊어지고 지휘자가 몇번 고쳐주다가 휴식! 하고 신경질을 냈다.
반주하는 미쓰 강이 손목시계를 자꾸 들여다 보더니 피아노 앞에서 일어섰다. “저 가 봐야 해요.”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테너의 첫 연습은 그렇게 무산됐다. 
이튿날이면 몇몇 사람은 청년회 회장과 현장에서 만나야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선 감히 뭐라 못 하나 본데.

운진은 한마디 했다. “황형. 무리하는 거 아뇨?”
청년회 회장과 그의 동료 일꾼들이 운진을 흘낏 째려보고는 연습실을 나갔다.
운진도 나가려는데, 성가대장이 불러세웠다. 
   “미스터 오가 책임지고, 우리 영란이를 설득시켜서 이번에도 독창을 맡아 달라고 해 보게.”
공군 대령 출신인 성가대장은 머리가 훤히 벗겨진 육십대였다.
운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그 여자한테 무슨 말을 하라구... 왜 다들 날 갖고 지랄들이야!'

   운진이 최 장로댁 문을 두드린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영란은 몹시 실망한 듯 응접실에 불려 나와서도 고개를 숙이고 손장난을 내려다 보기만 했다.
   “우리 술 한잔 하세.” 
   최 장로가 위스키를 내왔다. "술가게를 하다 보니 대접할 게 술 밖에 없네."
그 술은 일반인은 감히 쉽게 만져보지 못할 비싼 죠니워커였다. 
부엌에서 열서너살쯤 먹어 보이는 여자애가 목을 빼고 내다보다가 운진과 눈길이 마주치자 쪼르르 나와서는 최 장로의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집 보배. 내가 얘를 마흔다섯에 낳고는 얼마나 민망했는 지.” 
   최 장로가 클클 웃었다. "미스테이끈데 아주 예쁜 미스테끄."
그 여자애가 운진을 쳐다보며 자꾸 방실방실 웃었다. 
그 소녀는 나이에 비해 숙성한 탓인지 제법 가슴도 나오고 엉덩이도 펑퍼짐했다. 
그 소녀가 운진 앞에 놓인 빈 글래쓰를 살짝 밀어보내는 것이었다.
그 때 그 소녀의 앞섶이 벌어지며 흰 브래지어가 엿보였는데 그 나이에 비해 가슴이 풍만했다.
영란이 한숨을 토하고는 일어서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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