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pt.2 1-2x002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8. 06:51

   영란이 운진을 빤히 보다가 눈길을 돌렸다.
   “그래서. 찾아와서 말하는 용건이 뭐야?”
   “용서해 달라구.”
영호가 그 말을 들으며 문 간에서 문고리를 잡은 채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 때 조가란 자가 이층에서 또 내려왔다. 
   “자알들 논다, 씨발것들! 아주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그가 문고리를 잡은 영호를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영호가 조가의 뒤를 따라 나갔다.
   “용서해 주면, 뭘 어쩔건대?” 영란이 운진에게 물었다.
   “애들 당신이 다 해. 난 그냥 가끔씩 드나들어도 되면 와서 볼께. 애들은, 특히 딸들은 엄마랑 같이 있어야지. 둘 다 내 딸이니까 나랑 떨어져 있어도 상관 안 해. 아니, 커스터디를 빼앗아도 난 좋아. 내 딸들 만날 수 있게만 해 준다면.”
   “들어오는 건 안 하고, 애들 보러만 들르겠다?”
   “들어오는 건 안 하다니?”
   운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응? 나 도로 당신한테 들어왔는데?"
   “애들이 그렇게 하겠대?” 영란은 운진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말할 거야.”
   “키미년이 날 얼마나 욕을 했는데!”
   “걔는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논 거야.”
   “알긴 아네? 차암나아! 난 또 지만 잘 났다고 하는 줄 알았더니?”
영호가 씩씩거리고 들어왔다. “개새끼네, 이제 보니!”
   “넌 또 뭐야?” 영란이 영호에게 화살을 돌렸다.
   “아니, 이 양반 차를 긁을려 하잖아! 아니, 매형 차를.”
   “그래서!” 영란이 문을 활짝 열었다.
   “내가 쫓아보냈어.” 
   영호가 누이와 운진을 번갈아 훔쳐봤다. “두분, 얘기가 어떻게 돼가는 거야?”
운진은 미소를 지었다. 이 자식이 개과천선했나? 두분이라니...
영란이 문에서 뒷걸음질 쳤다. “채리아빠가 나한테 사과했어.”
영호가 감동 받은 얼굴 표정으로 운진을 봤다. 그리고 누이를 봤다. “그럼, 누이는?”
   “나? 나, 뭐?”
   “누나도 사과해야지!”
   “내가 왜 사과하니!”
   “원래는 누나가 부정했지. 말은 바로 하자구. 지금도 봐. 조가새끼 받아들었잖아? 누난 어차피 부부생활도 못 하게 됐는 데도 남자를 밝히잖아. 매형은 아직도 혼자라 하더라구.”
   매형? 이 자식이 사람됐네? 운진은 잠결에도 웃었다.
   “니가 어떻게 알어, 새끼야!”
   “영아가 그럽디다. 아, 영아 아들 낳았대매?”
거기서 모두들 말을 잃었다. 
 
   꿈에서도 영란은 운진이 지켜보는 데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암이 몸 안에 온통 퍼져서 수술도 못 하고 진통제만 쓰다가 더 이상 듣지도 않고 해서 결국 고통을 못 이겨 숨을 거두었는데. 그래도 그녀는 마지막으로 행복한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남편에게 말 한두마디를 남겼다. 
   “당신은 착한 사람. 고마워.”
운진은 잠결에도 꺼이꺼이 울었다.
   "사랑해, 영란이. 잘 가."
   운진은 21년 만에 그 말을, 그것도 꿈 속에서나 했다.
   한이 맺힌 말이다. 
   사랑...
그의 아내 영란은 남편 운진에게서 사랑이란 말을 살아 생전 한번도 들어보지 못 하고...
죽은 사람이 꿈에 나타나 들었을까.
그는 아내가 꿈에서 들어오라는 말을 알아들었다.
더 이상 따로 자지 말라는 말이었다. 
   더우기 아내가 가고 없는 마당에...

'[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2 1-6x006  (1) 2024.08.18
pt.2 1-5x005  (0) 2024.08.18
pt.2 1-4x004  (0) 2024.08.18
pt.2 1-3x003  (0) 2024.08.18
pt.2 1-1x001 앞서 간 이의 명복을 위하여  (0) 2024.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