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가 운진을 가게로 찾아와서 항의를 했다.
조가에게서 빼앗은 가게를 왜 형록에게 주었느냐고. 그가 차지했어야 하는 거라며 떼를 썼다.
"니 동생 주었다."
"걔를 준 게 결국 그 자식한테 준 거지!"
"덜 떨어진 놈! 의리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운진은 손짓으로 가라고 표현했다. "좋게 말할 때 가라."
"원래 이 가게도 우리집 꺼라구!" 영호가 카운터로 들어오려 했다.
"너랑 니네 엄마가 하다가 망한 거 내가 인수했다. 암만 대가리가 나쁘기로소니 기억도 못 하냐? 건물주가 누구냐? 자식이 뭘 알지도 못 하고."
"씨발! 죽은 누나 꼬셔갖고 홀랑 해 먹었으면서!"
"니 동생 준 가게가 원래 니 누나가 하다가 조가한테 판 거다. 그 다음도 얘기해주랴? 니네 누나가 조가새끼하고 얽히게 된 사연을?"
"에이, 시이!"
영호가 그 쯤에서 도망쳤다.
그날 저녁 영호가 어디서 괜찮아 보이는 여성과 밥 먹으러 왔다가 운진과 조카들을 만났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운진은 어딘가 낯 익어하는 그 여자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가만히 보니 가게에서 캐리아웃 담당하는 아주머니의 딸이다. '첨엔 둘이 안 될 것 같더니 꼬시는 재주도 있네?'
영호가 그 여자와 따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수시로 이쪽을 쳐다봤다.
국물을 떠먹던 킴벌리가 갑자기 훌쩍거리며 수저를 상으로 집어던졌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동작이라 챌리도 운진도 놀라기만 하고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킴벌리의 입에서 나즈막히 말 한마디가 나왔다.
“Bitch! She deserved that! (x년! 벌 받는 거야!)”
챌리가 동생을 툭 쳤다.
그제서야 킴벌리가 아차! 하고, 아빠를 흘끔 봤다.
운진은 암말도 안 했다. 이제 열여섯인 딸아이지만 가정을 원만히 꾸려주지 못한 부모 때문에 심적 고생을 하고 성격이 거칠어진 것을 늘 미안하게 느끼던 터라 비록 엄마를 욕했지만 여기선 일단 못 들은 척 하는 게 상책일 것 같아서였다. “어서 먹어. 식는다.”
킴벌리가 수저를 왼손으로 잡고 젓가락을 오른손에 다시 집었다.
“챌리야.”
“네.”
“오늘 집에 가면 말야, 아, 아니다.”
“네?”
“사실은, 크리스마스 지나면 우리 플로리다 놀러갈까 생각했었는데, 깜빡 했다.”
“네에.”
“What, Florida? When? (뭐, 플로리다? 언제?)” 킴벌리가 뜻밖에도 반색했다.
“엄마 때문에 뭐 꼭 어째서는 아니었는데, 좀 그렇잖니.”
“그렇죠.” 챌리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떠올랐다.
운진은 말을 꺼내놓고 곧 후회했다. ‘에이, 실수다. 나도 참 주책이네...’
"We're not going? (우리 안 가?)" 키미가 화를 냈다.
"그래, 가자! 사는 이유가 뭐냐!"
운진은 식은 음식을 대충 더 먹는 시늉을 했다. "오늘 집에 가면 말이다, 챌리야."
"네, 아빠!"
딸들의 눈이 그 날따라 유난히 맑게 보였다.
그런데 영호가 다가왔다. "니네들은 에치켓도 몰라? 왜 소란을 피우고 그램마!"
"너 죽고 싶냐?"
운진은 그 말을 낮게 하고 영호의 뒤를 봤다. "여자 보는데서 망신 당하기 싫으면 가라."
영호가 어 하고 무안해하다 제 자리로 가버렸다.
그 여자가 운진을 향해 머리를 숙여 보였다. 아내가 죽자 나이차도 무시하고 추파를 던져왔던 여인.
그러나 운진은 상징적으로 머리를 털어서 그런 상상을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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