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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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8. 06:56

   운진은 챌리에게 집에 가면 인터넷 들어가서 플로리다 주의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 월드이건 유니버셜 스튜디오이건 거기서 가까운 데로 호텔을 예약해 놓으라고 시켰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매는 서로 두 손을 마주 잡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How long are we staying, dad? (아빠, 우리 얼맛동안 머물건데?)” 
   킴벌리가 물었다. 그러면서 제 언니를 봤다. "챌리?"
   “챌리, 며칠 있어야 좋을 것 같냐?” 운진은 큰애에게 물었다.
   “제 생각엔요...”
   “How many days? (며칠이라고?)” 킴벌리가 다그쳐 물었다.    
   “Four days? Maybe? Can we?”
   “Cool! When are we going? (좋아! 언제 갈 건대?)”
킴벌리의 그 말에 딸 둘이 일제히 아빠를 쳐다봤다.
   “We have somebody's birthday coming, right? (누군가의 생일이 돌아오지?)"
   "Oh, oh, oh, I know, I know! The President's day. (아, 아, 아, 나 알어, 알어! 대통령 날!)"
킴벌리가 흥분했다.
영호의 얼굴이 이쪽 방향으로 잠시 돌아왔다.
   "그 때 가자."
   “Cool!”
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을 보며 운진은 한가지씩 가까스로 고비를 넘기는 심정이었다. 
부모의 이혼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인가를 신문 보도나 뉴스 시간을 통해 익히 알고 있으며, 게다가 미우니 고우니 해도 엄마인데 엄마의 존재가 사라진 집에서 지내기가 딸 둘은 고역일 것이다.
이쪽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영호가 부지런히 다가왔다.
운진은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내저었다.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그냥 가라."
   "어이, 정말!"
   "여기 사람들 많은 데서 망신 당할래?"
   "뭐요? 입만 살..." 영호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운진의 한손이 영호의 목을 움켜쥐고 눌러서 아무 의자에나 앉혔다. "담 번엔 모가지 부러질 줄 알아라."
그런데 그런 동작이 얼마나 신속하고 조용했는지 바로 곁의 딸들도 못 알아차렸다.
영호는 숨도 못 쉬고 운진의 팔에 매달렸다.
딸들은 무슨 일인지 보고 싶지도 않은지 애써 외면하며 갔다.
운진은 영호가 계속 개기면 아주머니의 그 딸을 건드려서 무참하게 만들겠다고 상상했다.

   아비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러 아이스크림등 야식을 샀다. 
두 딸은 포케이토 칩이며 팝콘 따위를 잔뜩 집었다.
아비는 가게에도 있는데 돈 주고 사기는 아깝다고 또 핀찬했다.
딸들은 이런 것도 재미라고 하며 깔깔대고 웃었다. 
   딸 둘이 차 앞에서 일단 헤어지며 아빠에게 키쓰를 날려 보낼 때 운진은 흐뭇하면서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와 있었을 때는 기억하건대 그런 분위기가 전혀 없었던 것 같았다.
운진은 챌리의 차 뒤를 적당한 간격으로 따르며 새삼 지난 날들이 마치 남의 일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킴벌리가 계속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운진은 헤드라잇을 반짝반짝 켜지게 했다.
   챌리는 엄마의 부정을 오히려 감춰주려 했던 아빠를 처음엔 이해를 못 하다가 그게 모두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용납하는 용기인 것를 배우고 나서부터 아빠가 한없이 존경스러워졌다고. 
학교에다 아빠의 예를 들어 엣세이를 써 냈는데, 선생이 직접 불러 내용이 혹 사실이냐고 물었다고. 
챌리는 예스 하려다가 장래에 그런 남자를 만났으면 하는 희망 사항이라고 대답했다고. 
서른이 넘은 여선생은 만일 그런 남자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자신도 당장 프로포즈하고 목숨을 걸겠다며 챌리에게 A 플러스를 주었다고...
   운진은 그 에세이 사본을 아내의 소지품에서 발견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 글은 물론 컴퓨터에서 영문으로 타자쳐진 것이며 이제 와서 혹시 아내가 영어 해독이 어디까지였을지가 새삼 의심되었다.
   만일 그녀가 해독하였다면, 그리고도 간직하고 있었다면...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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