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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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8. 00:52

   어디선가 돌을 밟는 듯 자그락자그락 소리가 들려왔다.
쑤는 차 문들이 제대로 잠겨있는지 보고는 손을 얼른 뻗쳐서 잠금을 눌렀다.
코 앞도 안 보이게 짙은 안개에서 물체 하나가 나타났다.
흰색의 스웨터를 입은 윤곽. 남자의 몸체. 제프 드미트리.
그의 양손에 하나씩 뭔가가 아주 조심히 들려져있다.
제프가 쑤의 문으로 와서는 아마도 유리를 내리라는 듯 손을 돌리는 시늉을 했다.
그의 손에는 하얀 스타이로폼 컾들이 쥐어져 있었다.
쑤는 차의 열쇠가 꽂혀져 있는지 보지도 않고 유리 내리는 단추를 눌렀다.
유리는 단숨에 내려가고 안개가 창턱으로 넘어 들어왔다.
그리고 제프의 손이 들어와서 그 컾을 받으라고 흔들었다.
쑤는 팔만 움직여서 그 컾을 받았다.
커피와 크림이 혼합된 아로마 향이 확 풍겼다.
집에서 남편이 다른 것은 몰라도 커피만은 지성껏 타서 준다. 크림과 설탕의 배합을 아주 정확히. 그러니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농도를 완벽하게 맞춰서. 
아, 일났다! 쪽지를 그렇게 써놓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제프랑 어디를 가기로 이미 예정한 거잖아. 쑤는 아쉽지만 안개를 자르며 유리를 올렸다.
제프가 운전석쪽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순간!
쑤는 이 차를 몰고 달아나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이 빨랐다. 
쑤는 그의 겉옷 밖으로 손가락만 내보내서 잠금 장치를 풀었다. 
제프가 차 안에 타면서 안개를 훅 하고 끌어들였다.
순간!
쑤는 강한 키쓰의 충동을 느꼈다.
제프와의 키쓰는 늘... 감미로왔었다. 그는 아주 정중한 키쓰의 명수였다. 
반면 남편은 그냥 입술만 무의미하게 갖다 대어주는 키쓰를 한다. 오히려 그녀가 답답해서 혀를 놀린다. 그의 혀를 물어주기도 하고. 그러면 남편은 혀를 얼른 거둬들인다.
   '안 돼! 나는 결혼을 했잖아!'
쑤는 고맙다는 표시로 컾을 약간 들어보였다. "Where are we? (우리 어디 있죠?)"
   "Why don't you guess? (추측해 보시지?)" 
제프의 손가락이 넘어와서 쑤의 컾 뚜껑 언저리를 따주었다.
남편은 커피 잔을 그냥 앞으로 밀어주기만 하는 걸로 끝인데...
   '안 돼! 나는 결혼한 여자야!'
쑤는 열린 틈으로 더욱 진하게 풍겨 나오는 커피향에 매료되었다. "땡쓰 애니웨이!"
제프가 고개를 크게 끄떡임으로써 유 아 월컴이라는 표시를 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셨다.
쑤는 차창 밖으로 차차 엷어져 가는 안개를 눈으로 추적했다.
제프는 미동도 없이 앞만 보고 있고.
쑤는 제프와 이 차 안에서 가졌었던 카셐스를 기억하고 있고.
그녀가 좌석에 깊이 앉고 다리를 벌리니 그가 커다란 몸을 구푸리고 열심히 사랑해 대던 장면이 또렷이 기억나고.
안개가 순식간에 물러갔다.
안개가 물러가고나니 이미 많이 떠오른 해가 환했다.
   "오오!"
   쑤는 저도 모르게 상체를 일으켰다. "오션?"
밖은 끝도 안 보이는 물이었다.
   "Lake. (호수.)"
   "레이크?"
   "We are in Ohio. (우리는 오하이오에 있소.)" 제프가 전화로 협박하던 말투가 아니었다.
   "오하이오?"
   쑤는 괜히 가슴이 울렁거렸다. 오하이오...
오하이오 주라 하고 호숫가라 하면 이 근처에 호텔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호텔은 그 두 사람에게 뜻 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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