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가 약 먹고 자야 하는 운진을 머리며 이마며 만져주며 말했다.
"나 보고 이제 그만 일하래매? 나 다시 일하라구?"
숙희의 말에 운진은 약에 취해서 대답도 못하고 잠에 빠졌다.
그 약은 뇌신경까지 안정시켜서 꿈 같은 것도 안 꾸고 푹 잔다는 의사의 처방으로 산 진통제였다.
운진은 그 약만 먹으면 마치 죽은 듯이 잤다.
운진을 재워놓고 아랫층으로 내려온 숙희는 챌리와 킴벌리와 마주쳤다.
"아빠는요?" 챌리가 늘 먼저 묻는다.
"약 먹고 자. 니네들 저녁은?"
"밖에서 먹었는데요."
"내가 쿸 할 줄 모르니까 니네들 고생이 많구나. 난 어쩌면 쿸 할 줄을 모를까?"
킴벌리가 계모 숙희의 팔을 잡았다. "Nobody's perfect, mom. (완전한 사람은 없어, 엄마.)"
"나는 빨래도 못해."
"알아요." 챌리가 미소를 지었다.
숙희는 챌리의 그 미소가 다른 날과 좀 다르다고 느꼈다.
자격지심이겠지만. "쉬어라."
"네."
"오케이. 굳 나잇, 맘!"
딸 둘은 제각기 각자의 방으로 가고.
숙희는 그들이 안 보일 때까지 지켜보다가 지하실로 내려갔다.
거기서 그녀는 술을 찾았다.
숙희가 혼자 있게 되면 긴 생각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된다.
무언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눈치이고 뭔가 계획을 세우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불안하게도 보인다.
그녀는 두 팔을 앞으로 안고 방 안을 천천히 다니는 습관이 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그리 골돌히 할까...
그녀는 어떤 어이없는 제안을 어느 누구에게서 받고 고민에 빠져있다. 소위 말하면 준재벌급 되는 이로부터 어이없이 프로포즈를 받은 것이다.
숙희가 그에게 자신이 기혼녀임을 분명히 밝혔지만 그는 진지하게 대쉬해 오고 있다.
그가 내놓는 조건이 어마어마하다.
맨션같은 집은 기본이고, 외제차도 기본이고 무엇보다도 그가 권유하는 일자리가 부사장급이다.
숙희 같은 여인이 일개 술 도매상 세일즈맨하고 살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때 국내 최고 가는 금융회사의 인사부장을 지냈고, 부사장까지도 올라갔고, 부정부패가 없기로는 웬만한 기업장들에게 그녀의 명성이 퍼졌다는 것이다.
그녀가 몸 담고 일했던 회사에서 그녀의 추천을 받아 승진한 사람들이 지금은 웬만한 기업체에서 다들 중역급에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안목과 추진력을 가진 이가 그런 남자와 그러고 사는 것은 그녀를 아끼는 이들에게 손해요 모욕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현재 그녀의 머릿속과 마음을 흔드는 어떤 제안 하나가 바로 준재벌 사내의 청혼이다.
그는 물론 전형적인 서구 남자이다.
한번 이혼한 경력이 있고, 현재 그의 자산은 포브지(紙) 500대에 들어간다.
그녀가 그에게 가는 그 날로 그녀 앞으로 자가용 헬기도 나온다고.
숙희는 다들 잠든 밤에 혼자 지하실에서 와인을 기울이고 있었다.
밤 열시 쯤, 그녀의 손에 쥐인 셀폰이 벨톤 없이 떨었다.
벨톤은 두번을 넘지 않았다.
숙희는 일단 위로 올라가는 문을 살폈다. 지하실은 셀폰 수신이 안 좋다지.
숙희 그녀가 와인 글래스를 얼른 내려놓고 일어섰다.
[헬로. 하이. 잠깐. 다른 방으로 옮겨야 해요.]
그녀가 지하실에서 윗층 게스트룸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숙희의 통화는 셀폰의 배터리가 거의 죽을 때까지, 열시경부터 근 자정까지, 지속되다가 끝났다.
상대 남자는 어떤 자원관리 계통의 회사를 운영하는 아주 똑똑하다고 소문난 자이다. 웬만한 대기업체는 그의 사람들에게 자원 관리나 검열 준비등을 의뢰한다고.
숙희가 고심하는 것은 그 쪽에서 제의하는 일자리가 힘들어서가 아니다.
그 쪽에서 제의하는 보수가 맘에 안 들어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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