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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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30. 00:33

   숙희는 남편의 입에서 제프란 이름이 나오자 속으로 놀랬다.
그러나 그녀는 능숙하게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제프는... 지금... 여기 없지."
   "들어갔어?"
   "들어가?... 오오, 아니... 나와 있어. 나중에 재판에서 실형 받으면 20년이래."
   "..." 운진은 그 쯤에서 대화가 끝날 줄 알았다.
   "나, 어쨌든 인터뷰만 할께. 인터뷰 하고... 뭐, 천천히 결정해도 되니까."
   "그러다 나오라 하면?"
   "글쎄... 그럴 거 같거든, 자기?" 
그 쯤에서 운진은 아내에게 등을 보였다.

   그 날 경찰에서 운진더러 출두해 달라고 연락왔다.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들 다섯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옆방 유리를 통해서 가장 유력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운진은 정말 앞의 유리가 일방적인 면만 보이나 하고, 엉뚱한 걱정을 했다. 아니. 
실은 그는 어떤 다른 일에 집중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아내 숙희가 인터뷰를 간다 하고, 웬만한 사업체들이 쉬는 토요일 아침에 나가서 오후 늦게까지 소식이 없다. 그것이 운진의 머릿속을 휘젓고 있는 것이다.
운진은 다섯명의 얼굴을 하나하나씩 보았다. 특히 눈 주위를...
그 날 가게에서 스쳐지나가던 자의 눈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특이했다.
   "No..."
   운진은 고개를 저었다. "None of 'em. (아무도 아니요.)"
사복 경찰 한명이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손짓을 했고, 유리 앞에 나란히 서 있던 또 하나의 사복 경찰이 유리 기둥에 달린 단추를 눌렀다.
키재기 표시판 앞에 일렬로 섰던 인물들이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사복 경찰과 나란히 섰는 여자 형사가 품에 안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Take a good look at these photos. And try to find the face that you can remember. (이 사진들을 아주 잘 보시요. 그리고 당신이 기억할 수 있는 얼굴을 찾으시요.)"
남자 경찰이 첫 페이지를 펼쳐 주었다.
칼라로 찍힌 얼굴들은 맨 흑인들이었다.
그 자의 눈은 흑인이 아니었다. 
시커멓게 뒤집어 썼고, 마침 저녁해가 열린 문으로 들어와서 윤곽은 못 잡았지만 눈동자나 생김새가 흑인은 아님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피부가 아주 흰 백인도 아니었다.
   운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인 종이들을 집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사진마다 종이 두 장을 아래 위로 해서 눈만 보이게 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그 찰라의 눈빛을 맞춰보려고 애를 썼다.
외면한 척 하면서 흘낏 노려보던 눈동자와 피부가 더럽게 보였지만 흑인은 아니었던 것이 틀림없었던 그 날의 공격자를 찾으려고.
   그렇게 하기를 근 한시간째. 
운진은 슬슬 싫증나기 시작했다.
그럴 때 그의 바지 주머니에 든 셀폰이 조그만 소리를 냈다.
   "You can answer the phone. (전화 응답해도 좋소.)" 여자 경찰이 말했다.
운진은 조심스레 셀폰을 꺼냈다. "헬로?"
   "자기! 아직두 폴리스 스테이숀이야?" 
숙희의 약간 지친 음성이 들려왔다.
   "응."
   "그래? 뭐 그리 오래 걸린대?"
   "사진을 보는 중이야."
   "그래... 그럼, 나... 집으루 가 있을께, 자기 끝나고 나올 때 전화할래?"
   "알았어."
   운진은 셀폰을 역시 조심히 접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Sorry."
경찰들도 지루한지 저들의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운진은 섣불리 백인이었던 같다고 말하기 싫었다. 아니.
그는 몸이 회복되면 스스로 찾아서 잡아 볼 생각이었다.
그는 민망해하며 사진 페이지를 넘겼다. "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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