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pt.2 13-6x126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30. 00:35

   운진은 종이를 더 접어서 사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사진들을 눈만 내놓고 모두 가렸다. 머리도 입도 코도. 오직 눈 두개만 보이도록 애썼다.
사진마다 종이로 접은 박스를 다시 대 놓고 자세히 들여다봤다.
종이의 간격을 점점 더 좁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운진은 고개를 힘없이 저어보였다.
여자 경찰이 운진의 손을 치우게 했다. "We thought so, too!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지!)"
운진은 맥이 풀려서 의자에 힘 없이 기댔다.
남자 경찰이 운진에게 악수를 청했다.
   "오케이, 오케이." 운진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떡이면서 악수를 받았다.

   운진은 집으로 가는 길에 영호를 만났다. "너 무슨 수작 하는 거냐?"
   "명은 길구만."
   영호도 그 새 나이가 더 들어서 파싹 늙어 보인다. "명두 길구, 복두 많지."
   "챌리 아버지 화가 놈 죽었다고, 왜 거짓말 했냐?"
   "그런 줄 알았거든!"
   "내가 아마 그냥은 안 넘어갈 거다."
   "그냥 안 넘어가면!"
   "허위신고로 헛탕치게 한 것에 대해 아마 벌 받을 거라구."
   "씨... 발."
   "보험금에 눈이 멀어서 하는 짓거리들 하고는. 어디 제대로 사람 구실하는 일 찾아서, 지금부터라도 인간답게 살아라."
   "얼씨구! 내 지금이라도 부인이란 여자한테 다 까발려! 그 동안 이 여자 저 여자 농락하고 다녔다고."
   "집사람, 이미 다 알고 있다."
   "아주 낯짝에 철판이 아니라 스텐레스판을 썼구만."
   "니 누나는..." 
그랬다가 운진은 혼자 당황했다. 
영호가 '니 누나는' 말까지만 듣고도 눈길을 슬쩍 돌렸다.
   '니 누이는 더 했으면 더 했지...' 
그 말이 운진의 입 속에서 죽었고, 그 말이 영호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들렸다.
   "화가 자식보고 눈에 띄기만 하면 가만 안 둔다고 전해라."
   "가만 안 두면?"
   "니 코를 작살냈던 것처럼! 이번에는 아예 뭉개준다고 해!"
운진은 허탈하고 멍한 정신으로 집에 돌아왔다.
   집은 빈 상태였다.
운진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디 있느냐고 물었어야 했는데,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밖에 있었던가? 집에 먼저 와 있는다 하더니.'
운진은 머리를 갸우뚱했다. '에잇! 무슨 상관이야!'
그는 리빙룸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운진 그는 누가 흔드는 바람에 눈을 떴다.
숙희였다. "왜 여기서 자아?"
순간 운진은 숙희의 내뿜는 숨에서 술냄새를 맡았다. 
   "어디 갔다 인제 오는데?"
   "으응. 인터뷰가 생각 보다 길어져서."
   "그 회사는 인터뷰에서 술 줘?"
   "아니. 자꾸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하잖아."
   "누가?"
   "오늘 인터뷰 간 회사 부사장이. 마지못해 저녁 먹고 와인도 했는데... 나 어떡하지?"
   "뭘?"
   "내가 돈 때문에 그러는 줄 아나 봐."
   "..."
   "더 준다고... 월요일부터 당장이라도 출근하래."
운진은 소파에서 몸을 세웠다. "당신 맘대루 하시요!"
   "정말?"

'[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2 13-8x128  (0) 2024.08.30
pt.2 13-7x127  (1) 2024.08.30
pt.2 13-5x125  (0) 2024.08.30
pt.2 13-4x124  (1) 2024.08.30
pt.2 13-3x123  (1) 2024.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