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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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30. 00:36

   "자기! 내 말 좀 더 듣고 가!"
   숙희는 그를 이대로 가게 하면 안 된다고 여겼다.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나 씻어야 해."
   "저녁은, 먹었어?"
운진은 숙희의 마지막 그 말을 무시하고, 욕실문을 탕 닫았다.
   '잘못된 결혼이야! 저 여잔 집에 들어 앉아서 살림을 할 여자가 아니었어!' 
운진은 그 부르짖음을 쏟아지는 샤워 물줄기에 대고 했다. '애들 결혼 빨리 시키고 이혼하자!'
숙희는 이미 닫힌 욕실문을 멍 하니 바라다봤다.
나는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리 줏대없는 여자처럼 누가 듣기 좋은 말만 하면 저 이와 비교하고... 
왜 이리 쉽게 흔들리는 거야. 
숙희 너 운진씨를 다시 찾을 때는 이유가 있었잖아. 저 이야말로 나를 보호해주고 내 생명을 지켜줄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그래서 캘리포니아에서 달려온 거잖아. 김 선생님 말 믿고. 
그런데 너 왜 이래...

   일요일을 운진과 숙희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처럼 지냈다.
특히 운진에게서 풍기는 싸늘함이 히터 기운이 돌아가는 집안을 춥게 만들었다.
챌리와 킴벌리는 각각 데이트가 있다고 나갔다.
숙희는 리빙룸에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거의 하루를 보냈다.
   부부는 일요일 저녁 식사도 각자 알아서 해결했다.
운진은 라면으로 대충 떼웠고.
숙희는 프로즌 되어있는 이탤리언식 요리를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에 데워서 먹었다.
그래도 잠자리는 한 침대에 들었다.
운진은 약 먹고 금새 잠이 들었다.
숙희는 컴퓨터에서 프린트 해 낸 것들을 이것저것 대조해 보고 하며 불을 밝혔다.
   운진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침대에 혼자였다. 
방 안은 은은하지만 운진의 골을 때리는 숙희의 장미꽃 계통 향수 내음이 돌았다.
   '결국 출근했군! 잘 해봐라!'
운진은 냄새가 싫어서 인상을 썼다. '남편이 그렇게 싫어하는데도 굳이 같은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것만 봐도... 우리는 진정한 부부가 아냐. 뭐야, 그럼... 정략적 부부?'
운진이 부엌에 내려와서 보니 딸들과 아내가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출근했는 양 컾들과 접시들은 싱크에도 못 미치고 부엌 식탁 위에 너저분했다. 
그는 한참을 보고 있다가 그 그릇집기들을 부엌 쓰레기통에 몽땅 버렸다.
   한편 같은 날 영호는 챌리 생부를 만나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하려구 자꾸 매형한테 얼씬거리는 거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부탁을 받고 이상한 짓거리나 하자 하고."
   "언젠 그 자식이라더니, 매형? 누가 진짜 매형인데."
   "솔직히 신씨는 매형은 아니지. 깨놓고 말하자면."
   "내가 오리지날이야. 그 자식은 몇물 간 뒤에고. 흐흐흐!"
   "몇물이라니, 씨이... 어쨌든 내가 보자한 거는... 난 빠지우. 행여 내 이름을 들먹거리지 마슈."
   "비겁하게시리. 같이 시작하재 놓구선 슬그머니 빠져 나갈려구? 쟤네들이 널 가만 놔둘 것 같으냐?"
   "사실 걔네들보다 그 매형을 정면으로 대하면, 신씨도 겁날 거유. 겉으로 보기엔 쑥맥 같고 만만할 것 같아도 겪어보슈."
영호가 신가의 거처를 나오는데, 영호는 신가와 같이 볼티모어 어느 식당에서 만난 거구들을 생각만 하면 지금도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른다.
우선 괜찮은 양의 돈을 건네주며 우디를 처치해 주면 더 주겠다고 해서 궁한 김에 덥썩 받아서 쓰기는 했는데, 뒤가 굉장히 두렵고 구리다. 
언제 그 자들한테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그런데 매형이 왜 그 정도로만 하고 말지?
영호는 그 점이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다. 경찰에다 말 한마디만 하면 우리는 제깍 걸려서 깜빵 갈텐데 신가더러 조심하라고 전하는 말만 하고 마는 이유가 뭘까? 
챌리 때문에 그러나? 어차피 신가새끼는 돈에 눈이 어두워서 매형을 까려 했는데. 아... 
맞다! 매형은 우리가 안 한 거라는 것을 안다! 우리가 미수에 그쳤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렇게만 말하고 만 거야...'
영호는 하필 매형이 그 날 마침 나타났나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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