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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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31. 00:56

   "챌리가 계속 늦게 들어오는데, 차라리 보내지?" 
   숙희가 말했다. "나이 충분하잖아."
   "여태 남자 친구와 같이 있다 오는 건가..."
   "아직 외박은 못 하고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있다가 오는 거겠지."
   "당신이 말해 보시요... 아무래도 아빠보다는 엄마하고 얘기를 하겠지."
   "우리만 오케이 하면 저쪽 집에서 당장이라도 데려갈 것 같이 굴던데."
   "챌리 의사가 더 중요하지..."
운진은 하마터면 습관처럼 등 돌리고 누우려다가 스스로 놀랐다. 
그래서 천장을 보고 누었는데, 숙희가 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쟤네들 보내기 싫어서 그러지? 보내고 나서 쓸쓸할까 봐?"
   "쓸쓸하기는... 숙희씨가 있는데."
   "난 쓸쓸할 거 같은데?"
   "숙희씨가?"
   "그 새 정들었잖아. 애들도 날 잘 따르구... 딸 떠내보내기를 아빠들이 더 서운해 한다고 하던데, 자기는 안 그런가 봐?"
   "..."
   "챌리가... 출생이 그래서?"
   "사실은... 챌리에게 더 정이 가오. 첫애라 그런지."
숙희가 상반신을 반쯤 일으켰다. "그런 거야? 나중에 남의 애인줄 알았지만 첫애라 더 애착이 가?"
   "아무래도..."
   "난 근데, 왜 집에서... 그렇게 안 대해주었지?" 그녀가 몸을 다시 뉘었다.
   "그나저나 그... 아버님 소식은 듣소?"
   "몰라! 자!"
   숙희가 몸을 홱 돌아 누었다. "잊을 만하면 자기가 꼭 얘기를 꺼내네?"
   "..."
   운진은 혈압으로 쓰러졌다가 유언도 못하고 임종하신 자신의 부친 생각이 떠올랐다. "때 늦기 전에 한번이라도 찾아뵙지?"
숙희가 누운 채 뒷발질을 했다. "더 이상 말하지 마!"

   숙희가 챌리의 결혼을 서두르는 이유가 뭘까...
운진은 그게 제일 궁금하다.
그가 믿기로 챌리가 개리 주니어를 만나게 된 때와 장소가 아빠와 새엄마의 결혼식장이다.
누가 먼저 접근을 시도했든, 일단은 그 둘이 서로 좋아서 만나기 시작했고. 
누구의 입에서 먼저 나왔는 지는 몰라도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 표현들을 했는데.
어찌보면 숙희가 굉장히 격려하는 듯 하면서 어찌보면 푸쉬하는 경향이 짙다.
그 점이 운진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것이다.
   "그냥... 애들 의사에 맡기지?"
   운진은 딱 잘라서 그냥 놔두라는 말은 못 했다. "챌리는 저 공부한 거 써먹고 시집가고 싶어한다잖소."
   "시집가서도 얼마든지 써먹지. 챌리도 은근히 가고 싶어하는 눈치인데, 왜 아빠란 사람이 초를 치실까?"
숙희가 잠옷 바람인데도 예의 그 향수를 공중에다 뿜었다. 
그녀가 그 새병을 집는데 마침 그 조그만 카드 조각이 건드려졌는지 화장대 끝으로 밀려났다. 
그녀가 자연히 그 카드를 손으로 가렸다. "행여 딴 말 하지 마. 아빠란 사람이 이상한 데에 집착하는 경향이 많어."
운진은 숙희가 움직이는 것을 찬찬히 지켜봤다.
숙희가 거울 앞에서 일어서는데 향수병에서 그 카드가 없어졌다.
숙희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운진은 물소리가 나기를 기대했다.
행여 아내가 그 카드를 갈기갈기 찢어서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리리라는 기대에.
그런데 숙희가 바로 나왔다. 
물소리도 안 났고 그리고 빈 손으로.
운진은 천천히 누우며 아내가 누울 자리에다 등을 돌렸다.
숙희는 침대 위로 올라와서는 역시 남편에게 등을 돌렸다.
부부는 자연 서로 등 진 상태가 되었다.
   '아까 카드 사인의 맨 앞 철자가 뭘까...'
그는 그 생각만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꿈에서 맨 앞 철자를 봤다. 맞는 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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