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숙희대로 선물한 이의 성의를 생각해서 뿌리고 나왔지만 굉장히 꺼림직한 심정이었다.
남의 남자에게서 향수를 선물 받는 자체가 무얼 의미하는지 깜빡했다고 변명할까?
하긴 그녀는 전에부터 화장품이나 향수 따위를 그녀의 돈이나 손으로 제대로 사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거의 대부분 남자들로부터 선물을 받았었다.
무슨 날 무슨 기념 등등에 맞추어서 이놈저놈 다투어 선물 공세를 해 왔었다.
심지어 같은 여자가 보더라도 너무 야해서 민망할 정도의 속옷도 받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선물을 한 남자를 만나러 나갈 때는 알몸에다 걸쳤었다.
그러면 그 야한 속옷을 선물한 자가 몹시 좋아하며 그 야한 속옷을 벗기고...
그러나 이제는 임자가 있는 몸인데, 남의 남자가 선물한 향수를 몸에 뿌리고 남편 옆에 누었었다니 숙희 그녀가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내가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네?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남편이 단단히 오해를 했겠는데, 그 이는 여간해서는 싫다좋다 내색을 안 하는 이이니...
숙희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분위기를 파악해 봐야지 하면서도 시급을 재촉하는 작업인지라 자꾸 기회를 놓쳤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격언도 있는데...
숙희는 다른 분야를 맡은 파트너와 회의하느라 시계를 보면서도 남편에게 전화를 해야지 하는 생각은 생각으로만 끝났다. 그랬던 그녀가 한숨 돌릴 여유가 돌아와서 시간을 봤을 때는 웬만한 직장인들이 퇴근을 한창 할 그런 때였다.
숙희가 남편의 셀폰으로 전화를 걸려고, 그녀의 셀폰을 열심히 들여다 보는데, 그녀가 임시로 사용하는 독방 사무실 문을 누가 노크했다.
이 방은 찾아올 사람이 없다더니!
숙희는 셀폰을 얼른 내리고 눈을 들었다. "하이, 제레미!"
제레미가 방문 앞에서 이제는 빈 노크하는 시늉을 했다.
숙희는 얼른 벽시계를 봤다.
그이한테 빨리 전화를 해야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우디가 되게 못마땅해 하는 기색을 보인 것이 숙희의 생각에 꽉 찬 하루였다.
"You got a minute? (시간 좀 있소?)"
제레미가 먹는 시늉을 보이며 말했다.
숙희는 백을 찾아 챙기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No, I don't think so. (아니,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Oh, you're busy? (아, 바빠요?)"
"I have to see my husband today. Or, he will be very mad. (나는 오늘 내 남편을 만나야 해요. 아니면 그가 아주 화를 낼 거예요.)"
"와이?"
"'Cause I stood him up last time. (그를 먼젓번에 바람 맞췄기 때문에.)"
"Oh... You went there with me. (아, 거기를 나와 같이 갔어서.)"
"예스!"
"You told him? You did not! (그에게 말했소? 말 안 했지!)"
"I did not like that place. (나는 그 장소가 맘에 안 들었어요.)"
"I beg our pardon? (실례지만 뭐라고요?)"
"Looked expensive. But the food was terrible. (비싸는 보였는데. 그러나 음식은 형편 없었어요.)"
"오, I see."
숙희는 은근슬쩍 가로 막은 채 얼른 비키지 않는 제레미 앞에서 멈춰섰다. "Excuse me?"
"Excuse me!"
제레미가 마치 스치듯 아주 천천히 비켜섰다. "I'm still stuck with what you said about your husband. You said he's lazy. (나는 당신이 당신의 남편에 대해 말한 것에 아직 걸려있소. 그는 게으르다고 당신이 말한 거.)"
숙희는 제레미를 피해서 방을 나서며, 벽의 스위치를 내려서 불을 껐다.
"'Cause that's how he is! (그가 그렇게 때문에.)"
그리고 숙희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자리를 떴다.
우디를 레이지라고 말한 것은 반응이나 행동이 느리다는 말이지, 생각은 어느 누구보다 굉장히 정확하고 또 판단을 굉장히 정확히 한단다! 단지 행동을 빨리빨리 안 나타내서 나를 미치게 모는 것이 불만일 뿐이지, 다른 것은 그냥 약간 불안할 뿐이란다! 셐스도 오직 그와만 하니까 문이 작아져서 느낌도 좋단다!
그녀는 이날 남편에게 근사한 셐스를 구사하자고 마음 먹었다.
남자들은 이상하게 삐쳤다가도 여자가 셐스를 잘 해주면 금새 풀려 헤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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