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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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31. 01:00

   제레미가 그녀를 접촉한 경위와 제법 큰 규모의 회사인데 예산 삭감으로 다시 흑자로 돌아서도록 구원 작업을 해 주는 이들을 한번도 들여다 보지않는 그 회사의 사장이란 자가 누굴지... 
숙희는 궁금해지는 요즘이었다.
이 회사에 대한 작업이 끝나면 합병 내지는 매수 대상자를 물색해줘야 하는데... 
숙희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직접 인수.
이 회사는 헛점이 너무 많다. 그래서 그 헛점만 보완하면 당장은 어렵겠지만 적자를 천천히 모면하고, 멀지않아 본전으로 상승했다가 적어도 5월이면 흑자로 돌아설 것도 같은데.
   숙희는 제레미의 회사의 지사사무실을 부지런히 나서며, 남편을, 아니, 남자를 가장 빨리 안심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섹스라는 생각을 다시금 굳혔다. 
그리고 남편의 심사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그가 못 마땅한 기색을 보인 그 향수를 몸에서 안 나도록 씻고 그 향수병을 치워야 한다. 물론 카드도 없애야 한다.
그녀는 점점 초조해지는 심정으로 차를 몰았다.

   반나절을 돌다가 실망적인 주문양에 김이 새어버린 운진은 마침 나타난 한인종합상가로 차를 몰았다. 
이 날 처음 지나치는 그 곳도 불경기의 여파로 인해서인지 주차장이 한산했다. 아니. 
한산하다 못해 주차장이 아예 텅 비었다.
덕분에 입구 가까이에 차를 주차시킨 운진은 보도에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몇몇 잡화상과 그로서리는 가격파괴라는 선전판까지 내걸었다.
   '그 놈의 테러 때문에 애꿎은 서민만 죽어나는군...' 
운진은 캐리아웃 음식도 겸하는 푸드 코트로 들어서서 신음처럼 내뱉았다.
그 안은 먹는 손님 보다 손님을 기다리는 음식점 종업원들의 숫자가 더 많았다.
   운진은 여기서는 뭘 먹을까 하며 골고루 분포되어있는 간이 식당들을 하나씩 구경했다.
그러다가, 그는 뭘 보고, 아니, 어떤 사람을 발견하고, 가슴이 철렁하도록 놀랐다.
   '저 여자가 여기서 일하네?' 
책방 여인. 귀국한다고 이별을 통고한 그 여인이 한 음식점에서 캐쉬어 일을 하고 있다.
운진은 저도 모르게 화초 진열대 뒤로 숨어서 그 곳을 부지런히 빠져 나왔다.
천상 다른 데로 가서 배를 채워야 한다. 
그녀를 못 본 척하고 다른 데서 사 먹을 수도 있겠지만 운진은 그럴 뻔뻔함이 결핍된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는 양심이 허락치 않고.
   운진은 미쭈비시 차를 향해 가며 리못 콘추롤을 겨냥했다.
어떤 남자가 셀폰을 귀에 대고 통화하며 운진을 지나쳤다. 
   "앞이야!" 그는 몹시 거칠게 말했다.
   '쳇! 티피컬(typical) 코리안 남편 놈이군!' 
운진은 많이 보아온 광경이지만 참으로 이해가 안 가는 한국인 남편들이라는 의아심에 늘 젖는다. 
운진은 푸드 코트 안으로 사라진 그 남자에게 빈 눈총을 쏘아 보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었다. 
   '넌 떠난 아내에게 잘 했니?'
그리고 자신에게 연거퍼 물었다. '지금의 아내에겐 잘 하니?'
운진은 차의 시동을 걸다가 무얼 보고 굳었다.
좀 전에 지나쳤던 남자가 다시 나오고 있고, 그 뒤를 책방 여인이 앞치마를 움켜쥔 채 부지런히 따라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남자는 몹시 거만하게 그것도 뒤에서 따라오든말든 개의치 않는다는 자세로 오고 있다.
여자는 행여 떨쳐 버리고 갈까 봐 겁 먹은 아이처럼 그렇게 오고 있다.
운진은 시동 걸고 난 뒤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여러 차례 데이트 했을 때 교양있게 나왔던 여인인데, 남편인지 남자 친구인지 꽤 싸가지 없이 구는 자 뒤를 저렇게 따르는 이유가 뭐지? 차가 따로 없나?
운진은 마침 차 두세대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숨어 지켜보는 형국이 되었다.
최신형 같이 보이는 일제 SUV의 불들이 깜빡거리고, 그 남자가 저 먼저 올라탔다.
여인이 옆 문을 열고 쫓기듯 올라탔다. 여인이 채 문을 다 닫기도 전에 남자가 얼마나 시동을 빨리 걸고 차를 움직이는지 벌써 후진을 시작했다.
그 차가 후진으로 거의 운진의 미쭈비시 뒤에까지 와서 멎었다.
운진은 안전벨트에 매달린 여인을 똑똑히 보았다.
그 차가 마치 경주용 차처럼 그렇게 출발을 했고, 운진은 여인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는 것을 보았다.
   그 때 마침 그의 셀폰이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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