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여인네들이 향수를 바꿀 때는 무슨 계기나 심경에 변화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여보. 당신 아무개씨 마누라 향수 냄새 맡아봤어? 하고, 물어서 남편의 반응을 보지 않나.
좋지! 그거 cK래. 나도 하나 사 써볼까?
그래서 득달같이 나가 사지않나.
난데없이 마누라가 향수를 바꾼 것까지는 좋은데.
누구한테서 선물 받은 거야 한 것까지도 좋은데.
그 향수를 선물했다는 자가 마누라가 일을 시작한 새회사의 부사장인지 머시기인지까지도 봐주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숙희처럼 카드를 노출시켰다가 슬그머니 치워서는 약장에다 깊숙히 숨겨놓는 행위는...
그녀가 왜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나갈까 하고 은근히 불만을 표하니까.
남편이란 이의 대꾸가 나도 아이 원더요 즉 나도 의문이요 하고 대답한 것을 숙희는 못 알아차렸을까.
아니면, 설마 네 까짓게 하고 무시해버렸을까.
그리고 숙희가 제레미를 따라 딱 한번 가봤던 멤버슆 레스토랑을 잠시나마 염두에 두었다가 에잇 하고 그만둔 진짜 이유가 이 사람은 그런 데에 안 맞는 사람이지!
그렇게 남편을 무시하는 안목에서 나온 자만이었다면...
남의 남자가 선물한 향수를 남편 앞에서 전혀 주저없이 뿌리는 모욕적인 처사는 그녀의 견지에서 당연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마치 목숨을 걸고라도 그녀를 지켜줄 것을 간절히 바라면서 짜증을 낸다면...
숙희 그녀는 남편에게 뿐만 아니라 남자에 대한 인식이 너무 잘못된 것인데.
섹스로 무마하면 남자들은 그만이더라...
과연 그래서 그녀와 섹스를 종종 즐겼던 남자들이 이제는 한꺼번에 돌변해서 그녀를 숨 막히게 조이고 기회만 닿으면 폭로한다고 여태 그녀를 협박하나.
괴롭힌다라고 보는 숙희의 변명이 참 비굴한 것이다.
그들은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너 같은 것이 감히 결혼이란 것을 해서는 남편이 누군지 그의 눈을 아웅하듯 가리고 방패격으로나 삼기 아니면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것을 같잖게 보는 것을...
남편이 잠자코 있다고 쑥맥으로 보는 숙희가 어찌보면 참 딱하다.
운진도 숙희를 참 딱하다고 보고 있는 차에 그녀가 뭘 먹을지 모르겠다고 하니 '댁' 이라는 단어와 아예 대놓고 '그 쪽' 이란 단어를 서슴없이 썼는데.
숙희는 대화가 왜 이러느냐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그녀는 화 내고 따져야 했을 텐데.
운진이 차를 들이댄 곳은 숙희가 조금 꺼려하는 24 시간 오픈하는 그 식당이었다.
안에가 좀 지저분한 편이고, 드나드는 손님들의 수준도 그렇고, 일하는 이들의 용모도 한참 뒤지는 그런 식당을 숙희는 질색인데. 남편이란 이는 결국 이런 데나 찾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말 한마디 뻥끗 못 하고, 앞장 서서 문을 확 잡아 채듯 여는 남편의 뒤를 따랐다.
어딘지 모르게 운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다.
말이라도 잘못 걸었다가는 괜한 불똥이 튀기라도 할 듯.
그런데 숙희는 남자들의 그런 분위기를 아주 잘 파악한다.
뭔가 되게 안 좋은 게 있을 때 남자들이 나타내는 그들 특유의 분위기.
그러면 지금까지의 숙희는 그 남자에게 바로 섹스를 제공할 챈스를 살펴봐왔다.
그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서도 운진은 내내 못 마땅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숙희는 '난 뭘 먹을까' 했다가 운진에게서 끓는 듯한 헛기침을 받았다.
"자기 전골 같은 거 안 먹지."
숙희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전골 같이 먹으면 좋은데..."
"내가 전골 같은 거를 먹는지 안 먹는지 봤소?"
"!!!"
숙희는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자기?"
운진이 아내의 묻는 말에는 대꾸않고 옆 테이블에 서브하고 가려는 웨이추레스를 손짓으로 불러 세웠다.
"여기 우선 밑반찬하고 쏘주 한병 갖다주슈."
그 웨이추레스가 '네에' 하고, 가버렸다.
"쏘주? 운전은?"
숙희의 그 말에 운진은 술 빨리 안 가져 오나 하고 웨이추레스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봤다.
"술 먹고 운전 못 하겠으면 애들 부르지." 운진이 그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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