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pt.2 14-7x137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31. 01:01

   전화는 물론 아내 숙희에게서였다. 
   "오늘도 그저 그래?"
   "그러네."
   운진은 시쿤둥하게 대꾸하고는 저 혼자 들켰을까 봐 놀랬다. "진짜 불경긴가 봐."
   "그럼, 그냥 일찍 들어오지?"
   "일찍, 들어, 오지? 집이야?"
   "응!"
운진은 차의 시계를 얼른 봤다. "오늘은 웬일로 이 시간에 집엘 다?"
   "오늘은 미팅만 했어. 바로 들어올 거야? 우리 먹으러 나가자."
   "그... 오케이."
왜 말이 부드럽게 나가지 못 할까... 늘 불만인 사람처럼 무뚝뚝하게. 아니. 
무뚝뚝한 사람의 말은 특징이나 매력이라도 있지, 퉁명스럽게 던지는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불쾌하게 만드는데. 그러지 말자 하면서도 그게 왜... 잘 안 될까... 
헤어질 때는 헤어지더라도...
운진은 차에 도로 타고 시동을 걸었다.

   숙희는 평복 차림으로 문간에 나와 있다가 남편 운진을 맞았다. "그 정도로 슬로우야?"
   "그러네... 이러다 밥 굶겠어."
   "내가 벌잖아. 가자!"
   숙희가 운진의 팔을 잡았다. "힘 내, 자기!"
숙희의 씩씩한 기상이 운진에게는 부담과 거북함으로 느껴진다. 아니. 
두려움이다. 운진이 바라는 여인상은 죽은 아내처럼 지나친 아양도 아니고 숙희처럼 활달해서 주눅 들게 하는 박력도 아니다. 그가 바라는 이상형은 영아처럼 순종적이면서 가리지않고 그리고 책방 여인처럼 다소곳이 앉아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그런 타입을 좋아한다.
   '뭣 같은 놈의 팔자는 맨...' 운진은 숙희가 떠다 미는대로 벤즈로 갔다.
   "자기 운전해!"
그녀의 말과 함께 차 열쇠 꾸러미가 날아왔다.
운진은 그 열쇠가 머리 위로 날아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봤다.
   "호호호! 남자가 그런 거 하나도 못 받어? 참 내애..." 
숙희가 몹시 우습다고 아예 허리를 굽히기까지 했다.
운진은 속으로 '이, 썅!' 하고, 울화가 치밀었지만 참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서 찬 땅에 떨어진 차 열쇠 꾸러미를 집었다.
   숙희는 잠시 그 멤버들만 드나든다는 장소를 생각해봤다. 
제레미가 제 이름만 대면 된다는...
   에이, 관두자! 쓸데없이 의심 살 짓은 하지 말자!
그런데 차를 모는 남편이란 이는 어디로 뭘 먹으러 가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자기, 어디루 가는데?"
   "뭘 먹고 싶은데?"
   "뭘 먹을까... 얼른 생각이 안 나네. 자긴?"
   "난 아무거나 다 먹으니까, 댁 먹고 싶은 데가 어딘지, 빨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댁?"
   "그 쪽말요."
   "말... 되게 기분 나쁘게 하고 있네."
   "..." 
운진은 다음 말을 속으로 외쳤다. 난 당신의 향수가 되게 기분 나쁘오.
   "왜 우리 대화는 늘 이런 식으로 나가지?"
   "나도 아이 원더요."
   "..." 
숙희는 남편의 빈정거리는 듯한 투의 말씨를 곰곰히 받아들였다. 왜 안 그렇겠는가.
소위 마누라라는 것이 근 일주일을 말도 없이 나갔다 들어와서는 때가 되면 말하겠다 하고는 아직 침묵이고. 
비록 임시직이지만 일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누구한테 얻었다며 새 향수를 뿌리고 다니니...
   어떤 남편이 좋아하겠는가.

'[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2 14-9x139  (0) 2024.08.31
pt.2 14-8x138  (1) 2024.08.31
pt.2 14-6x136  (2) 2024.08.31
pt.2 14-5x135  (0) 2024.08.31
pt.2 14-4x134  (0) 2024.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