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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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4. 04:14

   이튿날 즉 일요일, 운진은 숙희와 함께 보드워크로 나갔다.
   "그런 걸 독 이트 독 월드라고... 하지는 않지, 자기."
   전날 보다 약간 촉촉해진 물가 날씨에 스웨터를 여미며 숙희가 말했다. "자기 사욕을 채우느라 수백명에다 그 딸린 식구들을 눈 하나 깜짝않고 내버리는 자들을... 뭐라고 부르는 신종 단어가 있을 거야."
   "숙희씨도 그런 경우의 희생물이었어?"
   "나는... 내 경우는... 나의 엨스 보쓰 제프가 미리 귀띔을 해주었는데, 자기가 그만 쉬라고 해서 자진 사표를 낸 거구. 뉴스에 나왔잖아. 합병 전에 주식 팔면 불법이라고."
   "그게 무슨 뜻인데?"
   "그 동안 저들끼리 다 나눠먹고 빼먹고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을 울리는 거지. 보나마자 저들 지분은 이미 다 팔았겠지?"
   "그 물량에 줏가는 떨어졌겠고."
   "당연하지!"
   숙희가 운진의 붙잡은 팔을 새삼 잡아당겼다. "자기! 나 아이스크림 사 줘."
모래사장에 박힌 고리마다 연줄이 연결되었고, 미지근한 겨울 바람을 타고 각양각색의 연 모양들이 그 맨 끝에 매달려서 도망갈듯이 파르르거린다.
그 연가게에서 몇발 더 안 가 아이스크림을 가루처럼 만들어서 파는 가게가 있다.
숙희가 남편을 힘으로 밀면서 그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갔다.
   짙은 보라색의 긴 소매 스웨터에 베이지색 긴 바지를 입고 약간 높은 굽의 구두를 신은 숙희의 걷는 모습이 간혹씩 계절 장사를 마치고 닫은 가게 유리에 반사되었다.
청바지에 역시 베이지색 토파를 입은 운진은 아내와 보조를 맞추며 그 가루처럼 만든 아이스크림을 플래스틱 수저로 떠먹으며 걸었다.
숙희가 자신의 맛 아이스크림을 한 수저 떠서 운진의 입에다 대주었다.
운진은 얼떨결에 받아 먹고는 제 것을 숙희에게 내밀었다.
   "그건 싫어."
   숙희가 손에 쥔 플래스틱 수저를 흔들어 보였다. "달어."
   "당신 먹는 플레이버도 만만치 않은데."
   "내껀 맛있어."
   숙희가 다 지나온 뒤에 연들을 보려고 돌아섰다. "나 어렸을 적에 아빠가, 방패연 알어?"
운진이 고개를 크게 끄떡거렸다. "그럼! 직접 만들어서 날리기도 했는데?"
   "아빠가 방패연을 아주 크게 만들어서 날리러 갔던 기억이 나."
   숙희가 다시 앞을 향해 돌고 걷기 시작했다. "왜 잊고 사는 사람이 꿈에 보일까?"
   "엇! 왜! 누구?" 
운진은 걸음을 멈췄다.
숙희는 멈추지 않고 계속 갔다.
그래서 운진은 얼른 움직여서 보조를 다시 맞추었다. "누구?"
   "돌아가신... 공희엄마가..."
   "오오..."
   "아빠랑 같이."
   "아버님 연락처 알어?"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숙희가 빈 플래스틱 아이스크림 컾을 보드워크 상의 쓰레기통에 떨어뜨리듯 버렸다.
   "으, 춥다, 자기!"
   숙희가 운진의 노는 팔을 찾아서 잡았다. "으이, 춥다!"
   "숙희씨가 요까짓 날씨에 춥다는 말을 다 하네?"
   "나도 늙잖니! 맨날 청춘이야?"
   그렇게 말해놓고 숙희가 운진의 팔을 안았다. "왜. 내가 반말해서 기분 나쁘니?"
   "아니요? 기분 안 나쁩니다."
   "그럼, 됐어." 
숙희가 은근슬쩍 손목시계를 봤다. 
그리고 자정까지 몇시간 남았나 계산해 보았다. 알트! 움직여라, 응?
만일 알트가 동결시켰던 라이 오브 크레딧을 이 날 자정까자 안 풀면, 그녀는 집에 가는대로 어디로 누굴 연락할 것이다. 
거기서 돈을 끌어다가 넘어가는 회사를 일으키고.
그리고 그녀는 알트에게 도전장을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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