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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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4. 04:15

   바다를 향한 채 방파제에 기대어 운진의 등 뒤에 숨듯 붙어있는 숙희는 주위의 사람들을 틈틈히 살펴보다가 걱정할 눈길은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의 배 앞으로 두 팔을 얽듯 마주 잡고 그의 어깨에다 턱을 고였다. "자기..."
   "음." 운진이 돌아서려 했다.
   "아니. 그냥 가만 있으면서 내 말만 들어."
   "음."
   "나아... 어쩌면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돈 더 많을지 모른다?"
   "난 당신한테 돈이 얼마 있는 지도 모르는데?"
   "그러니까아... 자기가 상상하는 거 이상으로... 나 돈이 많다구."
   "그거 다... 여태 직장생활 하면서 안 쓰고 모은 건가?"
숙희가 턱 고인 자세를 바꿔서 이번에는 그의 등에 얼굴 옆을 갖다댔다. "근데... 언젠가부터 갑자기 돈이 싫어졌어."
   "당신 혹시... 주택 갖고 하는 플리핑(flipping)처럼 돈 갖고 장난해서 불린 거 아냐?"
   "그걸, 장난이라고 부르나..."
   "당신 엨스 보쓰 제픈가 뭐시긴가가 주식을 불법으로 팔아서 부당 이득을 취하는 방법처럼... 아냐? 당신 스스로 당신이 합병의 귀재래매."
   아이. 말이 이상하게 꼬인다.
숙희는 말 꺼낸 것을 후회하며 남편의 등에서 살짝 떨어졌다. "그렇게 번 돈은 아니구."
   "그럼. 누가 줬나 부지? 아무 이유도 없이?"
허걱! 
숙희는 가슴이 철렁했다. "돈을 누가 줘. 더구나 아무 이유도 없이."
   "유산 물려받았나?"
   "유산은!... 자기도 잘 알면서."
그 쯤에서 숙희는 저 혼자 민망해져서 남편의 등에서 떨어졌다.
   "내가 돈이 탐나서 하는 말이 아니요. 당신한테 무슨 돈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당신의 숨을 조이고 행여 누가 어떻게 할까 봐 불안해 하는 근원이라면..."
운진이 사용한 '근원' 이라는 단어가 숙희의 심장을 멎게 했다.
그녀가 챙긴 돈의 '근원'이 바로 알트 월래스이고. 
알트가 숙희를 말살시켜서 그 돈을 도로 빼앗으려고 큰 그물을 사방에다 깔아놓는 것이다. 즉 그녀가 어떤 일이든 손을 대기만 하면 알트가 득달같이 접수해 버리고 그 상대로 하여금 기도 못 펴게 깔아버리는 것이다.
   "자면서까지도 두려워하는, 그런 돈을 왜 탐낸단 말이요."
   "내가 자면서도 두려워하는지... 자기,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해?"
   "자는 사람 손이 내 옷을 움켜쥐고. 조금만 느슨해져도 깜짝 놀라는 그런 행동이 정상이란 말이요?"
   "내가... 그랬어, 자기?"
   "옛말에 때린 놈은 다리 오그리고 자고, 맞은 놈은 다리 쭉 펴고 잔다고 했소."
   "때린 놈이... 다리를... 오그리고 자... 내가 잘 때 다리를 오그리고 자?"
   "다리를 오그리기만 해? 온 몸을 돌돌 말고 내 겨드랑이로 파고 들면서."
   "내가?"
   "왜 그러는데?"
숙희는 저도 모르게 남편의 겨드랑이께를 봤다. "자기한테... 의지가 되어서 그러나 부지. 왜 그게 나빠?"
   "뭐가 그리 불안하고 걱정되어서 잠도 그렇게 자냐구."
운진이 바다를 향한 시선을 고정시킨채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어, 자기!" 
   숙희는 얼른 운진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나 떼어놓고 가려구?"
   "그 동안 힘들게 일만 했고, 바다를 보며 쉬고 싶다 해서 왔는데 이런 데 와서도 무서워하고 하는 그런 이유가 대체 뭐요?"
   "그 말... 나더러 결혼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랑 똑같네?"
   "당신이란 여자는 왜 말을 자꾸 요리조리 돌리고, 남편까지도 기만하나!"
허걱! 
숙희는 숨이 막혔다.
결국 남편의 입에서 아내더러 '기만한다' 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비굴하며 남을 기만하는 여자란 것이다. "나 자기 기만 안 해."
   "기만이란 단어의 뜻을 모르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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