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pt.2 2-5x015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9. 00:48

   하루가 지났는데 설이에게서 삼촌에게 연락이 왔다. 
   “그 분이 떠나신다면서 집으로 전화를 하셨는데요?”
   설이는 그녀가 말한 것 보다 왜 일찍 떠나나 하는 말투였다. "원랜 구정 지내고 간다더니..." 
   “어, 그래애? 변호사빈 뭐라대?”
   “변호사비가 오천불이래요. Five thousand.”
   “오천! 싸네. 근데, 어디로 보내라든?”
   “저한테 이-메일 주소만 주셨어요.”
   “어, 응, 그래, 불러 봐.”
   "삼촌한테 드리지는 말고, 돈 받으면 이-메일 하랬어요. 그 때 가서 보낼 주소를 알려준..."
   "알았다."
운진은 조카와 통화를 마치고 조금 갈아앉았던 것이 도로 잡쳤다. '진짜 문제 있는... 아줌마네? 혼자 사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병인가? 뭘 그렇게 가리는 게 많아.'
   혼자 살다 보니 그런 증세를 나타내는 건지... 
   그런 증세를 가져서 혼자 사는 건지... 
혼동이 왔다. 
하마터면...
운진은 하마터면 이란 단어를 내뱉았다. 하마터면 그런 여자와 살 뻔했다는...
다행히 같이 안 살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그러다가 그는 깨달았다. 이사를 한 다음에 주소를 가르쳐 주려고 그랬다는 것을.
   운진은 딸들의 귀가가 점점 늦어진다고 여기며 씻기 보다는 술을 찾았다.

   챌리는 학교 수업에 집안 살림까지 하려니 힘이 딸려 절절매었다. 
그래서 운진은 딸들과 상의 하에 설이를 와서 살게 했다. 한국으로 치면 사촌간이지만 여기서 자란 아이들은 그런 경계선을 긋지 않았다. 
챌리와 킴벌리가 설이를 언니 언니하며 잘 따르고 지냈다.         
설이도 그녀 특유의 상냥함과 부드러움으로 사촌 동생들을 잘 보살폈다.
   "언제고 취직이 되어 가야 하면 말해라."
운진은 설이를 볼 때마다 그 말을 했다. 
지금이야 당장 일자리가 안 나타나서 그렇지 찾아지기만 하면 바로 떠나야 할 조카이기에.
그럴 때마다 '그럴 게요' 하고, 대답하던 설이가 나중에는 들은 척도 않고, 종국에는 '그만 알았다' 하고, 빈축을 보냈다. 삼촌이 혼자 지내는 것에 행여 부담 가질까 봐 그랬다고 변명했지만 설이는 그녀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음식도 꽤 신경써서 준비하고, 특히 여자애들의 속옷 따위가 흩어져 돌아다니면 뭐라고 꾸중도 하는 모양이었다. 
특히 챌리가 유독 칠칠 맞은 것을 주로 지적했다.
큰애가 여자치고 좀 칠칠 맞은 편인 것을 알고 있는 운진으로서는 웃음으로 동조했다. 
때로는 셋이 방 하나에 모여 밤 늦도록 무슨 토론도 벌이는 기색이었다.
   무슨 의논들인지 아빠에게는 절대 비밀이라고...

   2월이 중순에 접어들었다.
운진은 딸들과 여행 계획을 잡자고 하고서는 조가의 머리를 돌로 깨는 사건을 일으켜서 두 주 갇혀 있었고 스피디한 재판을 받는 바람에 또 두 주가 흐지부지된 것을 기억했다.
   "괜찮아요."
   "Don't worry 'bout it, dad.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아요, 아빠.)"
챌리와 킴벌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넘겨버린다.
특히 설이가 삼촌의 행동을 감시하는 눈치를 준다. 예를 들면 가게에서 집까지 바로 오면 삼십분이면 충분한데, 거기서 조금만 더 지체되면 뭐 하다가 늦었냐고 꼬치꼬치 묻는다든지.
집에 가장을 찾는 전화가 오면 의례히 설이가 받는 모양인데, 딱 한번 여자가 걸어왔다.
그걸 놓고 조카에게 닥달받은 운진은 어이가 없어 화내는 것도 기권했다. 
   "사귀는 여자 없으니까 의심하지 마라. 여자라면 지겹다." 
그래도 설이는 감시의 눈총을 풀지않았다.
운진은 어쩌면 누님이 그렇게 시키셨나 했다. 왜?
남자 나이 오십에 수절하는 건 좀 무리 아닌가?
지금도 샤워 하며 만지기만 해도 발딱발딱 서는데.

'[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2 2-7x017  (0) 2024.08.19
pt.2 2-6x016  (0) 2024.08.19
pt.2 2-4x014  (0) 2024.08.19
pt.2 2-3x013  (0) 2024.08.19
pt.2 2-2x012  (0) 2024.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