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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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9. 00:48

   챌리가 남자친구를 아빠에게 보인다고 데려왔다. 
부모가 유대인인 갈색 머리의 동갑내기 같은 대 학생이었다.  
운진은 챌리가 이제 스물둘 되는데 벌써 남자친구 타령인가 했다가 하긴 여긴 미국이고 여기서 태어난 애들이니까 하고 생각을 고쳤다.    
그 청년은 동양남자가 약간 유창한 영어로 인사를 건네니 안심했는지 아주 예의 바르면서 활달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챌리를 좋아하게 된 동기가 그녀의 신비스러운 미소 때문이라고 했다. 
챌리는 슬픈 감정을 숨기려고 애써 즐거운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그 은은한 미소가 정통 백인 계통인 남학생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고 했다.

   그 남학생이 돌아간 후 운진은 생각에 잠겼다. ‘너무 기울어지는데... 잘 될래나?’
설이가 삼촌과 둘이만 남게 되자 다가왔다.
운진은 아랫방에서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남자 학생이 이 집에 엄마가 없는 걸 알고 갔겠죠, 삼춘?"
   "..."
   운진은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그게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저 그 에프비아이 취직된 오빠랑 헤어지게 된 것도... 집에 아빠가 없어서..."
   "뭐?"
   "그 오빠네 어른들이 그런대요. 부모를 이혼 때문에 없이 사는 것과... 아아, 여기는."
   "챌리 엄마가 이혼은... 이혼했지만 결국은 사별한 거지."
   "누가 죽어서 없는 것은 낫대요."
   "..."
   "아니, 제 말은... 엄마두 그러구. 삼춘... 여자가 있어야 한다구..."
   "떽!"
   "제가 어딜 가야 할지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구요. 삼춘 맨날 술만 드시구. 혼자 앉아 계시면 참 쓸쓸해 보여요."
   "..."
   "쟤네들도 그게 보기 실..."
   "보기 싫대? 아빠가 엄마 죽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다른 여자를 맞아 들이면 그게 더 싫지. 아빠 혼자 있는 게 왜 보기싫어? 난 전혀 안 그런데."
   "쟤네들은 아마 찬성할 걸요? 삼춘이 다른 여자를 만나도?"
   "생각 없어." 
   "엄마가 누굴 소개... 하려나 봐요."
   "나... 한테?"
   "네. 삼춘. 얼마 전에 새로 생긴 한인 종합 상가 아세요?"
   "롤링 스트리트에 있는 거?"
   "네. 거기 지하층에 책방이 있는데요."
   "..."
   "애들 유학 때문에 따라온 아주머니 한분이..."
   "됐다."
   "엄마 말이 삼촌이 좋아할 타입이래요."
   "좋아할 타입... 노 땡큐다. 됐지?"
   "한번 가 보세요. 지하층 책방."
그 말을 던지듯 하고 나서 설이가 가 버렸다.
   아무리 사내는 상처하고 화장실 가서 웃는다지만 내가 혼자 된 지 얼마나 됐다구.
운진은 핑게 김에 술을 한잔 더 해야했다. 쟤도 날 막 다루려 하네?
이제는 분노를 삭히려고 또는 울분을 삭히려고 찾는 술이 아니다.
이제는 외로워서 절로 손 가는 술이다.
형록이는 남의 가게 봐주랴 제 가게 보랴 동분서주하다가 차 사고도 냈는데 내색도 않았다. 그래서 치하도 할 겸 수고비도 줄 겸 보자는데 바쁘다고 사양한다.
아쉽지는 않지만 처남이란 자는 그 때 식당에서 본 이후로 어디 숨었는지 콧배기도 안 보이고...
애들은 엄마가 살아 있었을 때도 할머니네를 질색했다.
이제 엄마 죽고 없으니 할머니네는 커녕 삼촌도 질색했다.
그래서 운진은 다 핑게김에 혼자 술 하는 게 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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