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pt.2 3-10x030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0. 03:59

   두어시간 후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뜸해 질 무렵 운진은 휴게실에서 숙희를 만나 그동안 받아 모은 봉투들을 건내려 했다.
숙희는 봉투 따위는 모른 척 했다. 
   “좀 앉으세요. 바로 가 보셔야 해요?”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아 벤치에 앉혔다. 아주 자연스럽고 능숙했다.
운진이 되려 손 잡힌 것에 쩔쩔맸다.
   “아뇨. 가겐 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한참 서 있었더니 다리가 아파요.” 숙희가 다리를 두드렸다.
   “운동하신 분이 다리가 아파요?”
숙희가 다리를 두드리던 동작을 멈추고 운진을 보다가 웃고는 다시 계속했다. “제가 지금 몇살인데 아직도 운동타령이예요?”
운진은 할 말이 없어 탁자에 내려놓은 봉투들을 내려다봤다. ‘얼만지 세 준다 할까?’
   “운진씨두 많이 늙으셨네. 세월이 많이 흘렀죠?”
   “녜...”
   “저두 많이 늙었죠?”
   “그러네요. 아, 여자한테는 안 늙었다고 해야, 했나, 참?”
   “왜 그리 조바심을 내세요?”
   “저두 몰라요. 숙희씨만 보면, 늘, 겁이 나는 건지, 저도 모르게 말이 더듬어지고 진땀이 나네요. 이젠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옛날에 맞은 게 기억나서 그러는지?”
숙희가 입을 가리고 한참을 웃었다. 
   “아참, 내가 웃으면 안 되지! 아유, 우습다.”
그 때 누가 휴게실 문을 노크하고 밖에서 열었다. 
어떤 노인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여그 기신다고 누가 그러든디?”
   “어머! 김 선생님!” 숙희가 벌떡 일어섰다. 
   “아, 여그 맞네? 오? 미스타 오도 있고?” 
예전에 태권도 사범이었다던 김씨였다. 
운진은 무조건 인사를 하고 그와 악수를 했다. 
김씨는 안내 받은 의자에 앉자마자 이런 말을 꺼냈다. 
   “이제사 미쓰 한에게 날개가 달렸당께. 뭣이냐, 엄니 땜시 평생을 독신으로 산다고 작심했는디, 이제 상을 당해 잃어뻔졌으니 말여. 자아, 이자부턴 훌훌 털고 날으시요. 엄니에 대한 복수심은 되려 미쓰 한의 맴을 아프게 했는디, 차라리 자알 돼뿌렸오. 돌아가신 냥반헌테는 쬐께 미안한 말이지만.”
숙희가 숙였던 머리를 한참 만에 들었다.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비쳤다. 분해서 흘리는 눈물이다.
   “생각하문 참말로 부질없는 고집이었지, 잉. 실지로 따지고 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는디.” 
   김씨가 운진을 의미있는 눈빛으로 건너다봤다. "보시요. 미스타 오가 어찌크 여기 와 있는지는 몰르겠소만, 두 분이 그렇게 나란히 서 있으니 참말로 잘 어울리요."
   "그냥... 조문 와 있는 거예요." 
숙희가 애써 운진을 외면했다.
운진은 숙희의 눈물 흘리는 것을 머리에 털 나고 처음 본다고 여겼다.
씩씩하고 늠름한 여자도 눈물이 있구나... 하고.  
김 사범이 돌아가고, 그 방에 남은 두 사람은 서로 난처한 듯 반대편 벽을 보고 섰다.
   "초상 나면 자녀들은 식사를 못 하나요?" 숙희가 물었다.
운진은 눈을 크게 떴다. "누가 그래요?"
   "나가는 건 안 되겠죠? 그래도."
   "누가 그래요?"
운진의 흥분하면 막무가내격인 태도에 숙희는 웃음이 나왔다. 덤벙대는 건 여전하네.
   "그 짬뽕집이 여기선 먼데..."
   "짬뽕요? 어디요?" 숙희는 벌써 구미가 당겼다.
   "천상 요 길 건너 레스토랑으로나..."
   "앞장 서실래요?"
   "거기서 안 꺼릴래나아..."
   "싫으면 말래죠."
   "제가 가서 시켜 올까요, 가실래요."

'[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2 4-2x032  (0) 2024.08.21
pt.2 4-1x031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다리  (0) 2024.08.21
pt.2 3-9x029  (0) 2024.08.20
pt.2 3-8x028  (0) 2024.08.20
pt.2 3-7x027  (0) 202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