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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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1. 03:48

   숙희가 운진을 똑바로 마주 보고 섰다.
   “운진씨. 이런 말도 제가 먼저 해야 해요?”
   “녜? 아아...” 운진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참 나, 자존심 엄청 상하네!” 
   숙희가 어이없다는 웃음을 보였다. "여전히 내성적이신가?"
   “제, 제가 염치가 없어서...”
   “됐어요! 그럼, 모레 봐요.”
   “녜.”
   "에이그! 답답한 분!"
숙희가 주먹을 들어보이고는 돌아서서 차로 갔다.
그녀를 뒤에서 보는데, 운진은 어쩐지 그녀의 어깨가 슬퍼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숙희의 모친을 공원 묘지로 내모시는 날 날씨가 너무도 쾌청했다. 
관이 곧 묻힐 자리 위에 올려져 있고, 그 주위를 여러 사람들이 둘러섰다. 
고인이 마지막까지 참석했던 교회의 목사가 집도를 인도했다. 
숙희는 눈 같이 흰색의 정장을 하고 챙 넓은 모자에 그물을 늘이고 맨 앞에 섰다. 
공희는 수건을 펑펑 적셔가며 대성통곡하는데 숙희는 가끔 손가락으로 눈주위를 누르기만 했다. 
운진은 몇발짝 떨어진 지점에 서서 하관식을 지켜봤다.
   기도가 끝나고 사람들이 천막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숙희가 맨 앞장을 서고 그 뒤로 공희가 울며 따라왔다. 
그 뒤로 운서가 왔다.
리무진이 문이 열린 채로 대기하고 있는 것을 잠깐만 기다리라는 신호를 하고 숙희가 운진에게 다가왔다. 
   “바로 가실 거죠?” 
   그녀의 눈이 울어서 빨갰다. "가게 때문에 바쁘실 텐데."
   “조금 시간이 있는데요…”
   “제가 가게로 전화를 할까요? 의논 드릴 일이 있을 것 같애요.”
운서가 조심히 나섰다. 
   “이따 집으로 오라 하지? 저녁이나 같이...”
   “상 당한 사람이 남의 집을 방문하면 실례 아녜요, 언니?”
   “요즘도 그런 거 따지나?”
누이의 말에 운진이 나섰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하죠, 뭐.”
   “요즘 너 공사가 마무리 단계라 며칠 계속 밤을 세웠는데, 핑게 김에 일찍 들어 와, 그럼.”
운서 옆에 있는 설이가 말했다. “엄마, 난 지금부터 삼춘 집으로 갈까?”
   "그럼, 이따 뵈요, 언니." 
숙희가 목례를 하고는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리무진들이 다 빠져나가도록 서 있다가 자신의 차로 돌아 온 운진은 숙희가 의논할 일이 있다는 게 뭘까 하고 생각해 봤다. 
운진은 궁금해 하던 것을 설이에게 물었다. 
   “숙희씨 아버님은 왜 안 보이시니?”       
   “삼춘 몰랐어? 새살림 났잖어. 그래서 우리 부사장 아줌마가 오지 말랬대.”
운진은 기가 막혔다. ‘아니, 그 냥반. 연세가 얼만데 새살림을? 대단하군!’ 
   "그리고 나 부사장 아줌마 비서야."
삼촌이란 이는 부사장 직함이 듣기 싫었다. “너, 그 에프비아이 오빠하고는 어떻게 됐어?”
   “We are done! (우린 끝났어!)”
   “그래? 니가 끝냈니?”
   “누가 끝냈든, 우린 던(done)!”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망의 기색이 전혀 없는 조카를 보고, 운진은 고개만 끄떡였다. 
운서가 곁에서 듣다 말했다. “우리가 너무 기우니까…”
설이가 펄쩍 뛰었다. “Mom! That’s it! Done! (엄마! 그게 다야! 끝났어!)”   
   운진은 일찍 들어오라는 누이의 말을 뒤로 하고 가게로 향했다. 
그는 몰고 가는 차 안에서 숙희의 심중이 무엇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 봤다.    
설마 합치잔 말은 아니겠지...
헷,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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