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pt.2 3-9x029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0. 03:59

   그러면서 모두에게 봄이 왔다.
이제 운서고모는 주말에 안 온다. 주말에는 거의 빈 집이기 때문이다.
운진은 새 여자를 사귄다든지 하는 것 없이 그저 가게일에만 충실했다.
킴벌리는 집에서 가까운 칼리지로 입학허가 통지를 받았다. 실력이 챌리만은 못 했던 모양, 언니가 다닌 대학에서의 합격 통지를 못받았다.
   세 부녀는 연휴 때마다 골고루 놀러다녔다.
딸들이 나이 더 먹고 남자가 생기고 시집을 가면 평생 없을 기회를 미리 챙긴다고...
지난 해 연말은 비행기를 타고 플로리다에 다녀왔다.
얼마 전에는 차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다녀왔다. 세 부녀가 교대로 운전하며...
갈 때마다 챌리가 준비한 여행 안내 가이드는 가 볼만한 곳의 지도, 극장, 샤핑몰, 레스토랑 등등 인터넷에서 뽑아낸 분량이 제법 많았다. 
운진은 그저 엄지손가락만 치켜세웠다.
   운진은 몸에 배인 벤즈 차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챌리가 헌 차를 세워놓고 엄마의 렠서스를 물려받았고, 킴벌리는 특이해서 미쭈비시에서 나온 두 도어짜리 스포츠 카를 얻었다.
그렇게 세 부녀는 조용히 살았다...

   늦은 봄과 초여름 사이에 숙희가 모친상을 당해서 왔다. 
설이가 특별 휴가를 얻어 따라왔다.
설이에게서 그 소식을 들은 운진은 망설였다. 그는 누이 운서가 그녀의 모친 장례에 그냥 아는 사이로라도 가 보는 게 도리일 것 같다는 충고에 운진은 설이를 따라가서 숙희를 만났다.
검은색의 정장을 입고, 빈소를 지키고 있던 숙희가 운진을 보고는 암말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이렇게 와주셔서 고마워요, 운진씨.”
이십년도 넘게 지난 후의 만남. 
오히려 운진이 떨었다. 
   “아, 안녕, 하십니까. 유, 유감입니다.” 
   운진은 처음부터 진땀을 흘렸다. "정말입니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절며 어떤 여자가 빈소에 들어섰다. 첫눈에 보기에도 꾀죄죄해 보였다. “언니...”
   “동생예요. 공희. 아시죠?” 
숙희가 운진에게 공희를 소개시켰다.
   “아, 그럼요. 공희씨. 우릴 많이 카바해 줬었죠. 예, 옛날에.” 
   운진은 그렇게 말해놓고 아차! 했다. “그, 그냥 옛날에 말입니다…”
그 뒤로 노무자처럼 보이는 남자가 아이들 넷을 앞세우고 들어왔다. 
아이들 중 여자애 하나가 숙희에게 달려와 허리를 안았다. “이모오!” 하고.
숙희가 허리를 굽히고 그 여자애를 어루만졌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숙희가 옷매무새를 다듬고 서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운진은 나가지도 못 하고 어떻게 하지도 못 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지나가는 조문객들과 인사를 나눴다. 
예전에 혹 교회에서 안면이 있던 사람들이 운진에게 유감의 뜻을 표했다.
결국 자연스럽게 운진이 문간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안내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에게 봉투를 건넸다. 
운진은 얼떨결에 조위금 봉투를 받기 시작했다.
공희와 차서방은 열외였다. 
운진은 숙희를 찾았다. 
   “진짜, 누가 이걸 받고 적어야죠. 어쩌다 보니 내가 하고는 있는데...”
   “운진씨가 해 주세요.”
   “저기 동생분의 남편...”
   “아뇨. 운진씨가 좀 해 주세요.” 숙희가 운진의 귀에 대고 말했다.
운진은 그녀의 향수 냄새와 숨결을 느끼고 정신이 아늑해졌다. 
   “그럴께요.” 운진은 쥐구멍을 찾는 기분이 되었다.
숙희가 운진의 어깨를 툭툭 쳐 주고 돌아갔다. 
운진은 방명록이 위치한 입구에서 오는 사람들한테마다 인사를 하고 맞이했다.
사람들은 전혀 당연한 듯이 운진 앞으로 모여들었다.

'[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2 4-1x031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다리  (0) 2024.08.21
pt.2 3-10x030  (1) 2024.08.20
pt.2 3-8x028  (0) 2024.08.20
pt.2 3-7x027  (0) 2024.08.20
pt.2 3-6x026  (0) 202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