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pt.2 4-1x031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다리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1. 03:47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다리

   운진은 반도 채 안 먹고 포크를 놓은 숙희의 파스타 접시를 쳐다봤다.
숙희는 와인만 비웠다.
웨이추레스가 와서 그릇들을 치우며 숙희의 와인 주문을 또 받아갔다.
이내 유리잔에 맑은 와인이 가득 담겨 날라져왔다.
숙희가 한두모금 입에 대고는 내려놨다. “운진씨.”
   “아, 녜.”
   “제가 만일 취하면 절 호텔까지 태워다 줄 수 있어요?”
   “그까짓 와인 두 잔에 숙희씨가 취해요?”
   “이젠 늙어서 조금만 마셔도 취해요.”
   “그러세요, 그럼. 많이 드세요.”
   “제가 취하면 막 때리든 거, 기억나요?”
   “녜. 헤헤.” 운진은 그때서야 비로소 웃었다. 
예전의 그녀는 그랬다. 어쩌다 술 몇잔 나누면 숙희가 취해서 운진을 때리고 땅에다 메다꽂았었다. 
   “지금도 누굴, 때리고 패요?” 운진은 제딴에는 위로한다고 한 말이다.
숙희가 핫핫핫 하고, 크게 웃었다. 
   “지금 내 기분에는 말예요. 운진씨를 딱 한대만 때려줬으면 기분이 싹 풀리겠는데, 어떡허죠?”
   “그렇게 해서 기분이 풀리신다면, 열대라도 맞을께요.”
   “정말요?”
   “그런데요... 왜 꼭 묘지를..."
   "옛날에 아버지가 사 놓은 자리래요. 미리..."
   "관리비는, 그럼..."
   "제가 줘야죠."
   "..."
   “먼저 나가세요. 저 손 좀 씻고 계산하고 나갈께요.” 
숙희가 계산서를 가졌다.

   다이너의 주차장으로 나오니 오월의 훈훈한 바람이 술 기운에 달아오른 운진의 뺨을 스쳤다. 
나란히 세워진 자신의 실버색 벤즈와 숙희의 실버색 렌트 카를 쳐다보는 운진의 어깨를 뒤늦게 나온 숙희가 툭 쳤다. 
   “허리 좀 펴요! 남자가 꾸부정한 자세는 보기 흉해요.” 
그녀의 술기운이 섞인 입김이 운진의 코를 스쳤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차는 여기다 두고 가야 하는지...”
   “됐어요. 원래는 취하도록 마시고 싶었는데, 그만 두기로 했어요. 호텔에 가서 더 시켜 마시든지, 지금은 적당히 좋아요.”
   “모레가 내모시는 날인가요?”
   “그렇죠? 그 날 와 주실 수 있어요?”
   “올께요.”
   “오늘 고마웠어요.”
   “천만예요. 그럼, 조심해 가세요.”
돌아서서 가려던 숙희가 다시 돌아서서 운진을 마주했다. “아참!”
   “녜?" 
운진은 혹시나 이 여자가 드디어 태권도 실력을 발휘하려나 긴장했다.
   “저 어머니 장례 끝나고 원 위크 정도 더 머물면서 동생이랑 처리할 일이 있는데, 그 때 운진씨 시간 좀 내실 수 있어요?”
   “녜, 그, 그럼요. 뭐 제가 도와 드릴 일이라도...”
숙희가 한발 다가섰다.
운진은 이제야 말로 이 여인이 치고 나올 모양이라고 은근히 긴장했다.
숙희가 술 내음을 풍기며 가까이 왔다.
운진은 은근히 겁내며 한발 뒤로 물러섰다.
   "왜 그래요?" 숙희가 그녀 답지 않게 눈을 흘겼다.
   "안전거리를..."
그의 말에 숙희가 주먹을 보였다가 내렸다. "진짜 때려 줄까 부다!"
   "그 술주사는 여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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