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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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0. 03:58

   “영아씬 들어가 계세요. 내가 가서 데려올께요.” 
운진은 차의 시동을 걸었다.
   “키미한테 얘기를 잘 해서 데려오세요. 만일 안 따라오려 하면 저한테 연락...”
영아의 망설이는 모습에서 운진은 거리감을 느꼈다. 안 따라오려 하면 연락을? 
영아는 사뭇 그 집 밴차로 갈 기세였다.
   “그러면 차라리 처제가 챌리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가든지. 난 다른 데 가 있다가 아이들이 풀어지면 연락 받고 가던가. 여기 좁은 데에 애들을 데려다 놓느니, 차라리...”
   “잠깐 계세요, 그럼?” 
영아가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운진은 차의 발동을 끄고 내렸다. 
그는 조금씩 굵어져 가는 빗발울을 올려다보며 가게를 기웃거리며 영아가 나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챌리가 애써 아빠의 차를 외면한 채 나오고, 영아가 아기를 포대기에 씌운 채 나오면서 운진에게 가게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챌리가 모는 차에 영아가 타고 그 차는 떠났다.
   운진은 챌리의 차가 골목을 빠져 나간 후 자신의 차에 타고 출발했다.
운진은 차 안에서 형록의 가게로 전화를 했다. “혼자 수고해라. 난 가게로 가 있을게.”
   “그럴려우? 그럼, 내가 이따 그리로 갈까?”
   “그래, 와라. 내 생각에 영아씨가 오늘 안으로는 안 돌아올 거야.”
   “그렇겠지. 그러게, 나아참, 애는 왜 때려갖구...”
   “수고해라.”
   “알았우.”
운진은 통화를 끝낸 후 이제는 제법 시야를 가리는 빗발을 헤치고 차를 몰아 가게로 갔다.

   그는 경보 장치를 끄고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후 불을 켜지 않은 채 가게 안을 더듬어 뒷방으로 갔다. 
툭 하면 피신해 와 있곤 하던 뒷방은 이 때도 운진을 말없이 반겼다.
몇시간 전에 떠난 방이지만 이 때는 방에 들어서는 느낌이 달랐다. 
그는 웰컴 뱈으로 여겨지는 환청을 들었다고 여겼다. 
그 소리는 그의 음성 같기도 했고 톤이 아주 굵고 낮아 생소하기도 했다. 
   어서 오라고?
운진은 히터를 켰다. 
돈 좀 아끼려고 집에 갈 때는 히터를 끄는데 마음도 쓸쓸하고 하니 더욱 춥게 느껴졌다. 
그는 사무 보는 책상 서랍을 열어 오래 전에 마시다가 넣어둔 위스키병을 찾았다.
   ‘그래, 니 놈이 그러니까, 언제 마시던 거냐?’ 
운진은 술병을 꺼내 쳐들었다. ‘씨발, 이런 생활을 더 이상 안 할 줄 알았더니, 마누라 때문이 아니라 딸년한테 손찌검한 덕택에 또 여기서 이 짓이군! 에라이, 씨발놈아, 니 팔자도 차암 좆 같구나!’
운진은 병마개를 열어 반쯤 남은 이홉들이 술을 한번에 비웠다. 
술은 목구멍을 태우고 흘러 내려가며 속에서 열기를 단번에 훅 끌어올렸다. 
운진 그는 솟구쳐 오르는 몸의 반작용을 숨을 멈추고 참아냈다. 
금새 머리로 땀이 배어나왔다. 
그는 빈 병을 책상 밑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또 한 병을 가지러 방을 나왔다. 
   참! 형록이 올 거지!
그는 잘 안 보이지만 밖을 그냥 내다봤다.
밖에 비는 이제 청승맞게 내리고 있었다. 
   하필 또 이런 날 비...
그는 멍청히 비를 구경하다가 아참 했다.
그는 그랬다가 곧 에이 뭘 하고 떠올랐던 생각이랄까 걱정을 떨궜다. 
   넋 빠진 놈! 이젠 나랑 상관없는 인간들인데.
그는 처갓집 지하실에 비만 오면 물이 새는 것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이제부터는 형록이가 그런 걱정을 할 거라고 상상했다.
   그나저나 처제가 애들을 잘 타일렀는지...
그는 제 손을 내려다봤다. 누이의 말이 그의 귀에 들려왔다. 네 손엔 살이 있어.
그는 챌리의 얼굴이 괜찮은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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