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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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0. 03:57

   설이가 할머니를 삼촌 집에 내려줄 겸 또 인사차 가게에 들렀다. 
그녀는 캘리포니아로 취직이 되어 가는데 우선 임시 거처는 숙희가 방 하나를 내준다고 했다. 
운진은 뭐라 할 말이 없어 돈 오천불만 쥐어주었다.
변호사비가 정말 오천불 밖에 안 되는지...
설이가 가기 전에 자꾸 뭐라 하려는 것을 운진은 애써 무시했다. 
짐작에 숙희의 얘기를 하려는 줄 알고 피했던 것이다.

   애들 친할머니는 미웠던 며느리는 며느리고 또 죽었으니 이제 남은 손주들이 가여워 할머니들 특유의 비위맞춤으로 아이들을 달랬다. 
특히 킴벌리는 할머니가 손도 잡으려 하고 머리도 쓰다듬으려는 것을 질색하다가 이내 받아들였다. 
금새 킴벌리가 먹고 싶다는 음식 주문이 척척 받아졌고, 반면 챌리가 겉돌기 시작했다. 은연 중에 노친네가 결국은 남의 딸인 챌리를 등한시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아비 운진이 뒤늦게 눈치챈 것은 챌리가 느닷없이 외박한 때였다. 
챌리는 셀폰도 끄고 응답을 안 했다. 
문제는 킴벌리가 할머니의 갑작스런 사랑에 흠뻑 빠져 언니가 집에 안 들어왔어도 걱정을 안 했다. 작은딸은 아빠가 묻는 말에 양어깨를 들썩해 보임으로 대신했다. 
운진은 누구에게 나무랄 것도 없이 혼자서 화가 나 리빙룸 소파에 앉아 술을 찾았다. 
그는 위스키를 몇잔 들다가 불현듯 전화기를 찾았다. “어이, 형록아, 너 혹시 니 아파트에 우리 챌리 가 있나 알아볼래? 미안하지만?”
형록이 웃었다. “하여튼 눈치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좀 느려 터져서 그렇지?”
   “거기 가 있냐?”
   “영아씨가 어제부터 붙잡아놓고 있우! 애는 집에 절대 안 들어간다고 울고불고, 왜, 무슨 일이 있었우?”
   “노인네가 좀, 내색을 했나 봐.”
   “그럴 줄 알았지! 그러게 노인네는 왜 오시게 해! 차암나, 뭐 하는 거유?”
   “밥을 누가 해야 할 거아니냐!”
   “지들보구 좀 하라든가, 아니면, 시켜먹든가. 아니면, 새 여자를 빨리 얻든가! 외할머니가 와서는 난리치고, 친할머니가 와서는 내색하고, 아니, 애 보고 죽으라는 거유? 가뜩이나 제 설 곳을 못찾아 방황하는 애한테 뭐 하는 짓이유?”
   “몇시에 끝나냐?”
   “이리로 오슈.”
   “거기 가게에 있어?”
   “아, 오래문 올 것이지, 말 되게 많네!”
   “알았어, 임마! 자식이, 왜 너까지 지랄이야!”  

   형록의 가게로 찾아간 운진은 챌리를 보자 화가 치밀었지만 아이한테는 차마 아무 말도 못 했다. 
영아가 달래고 밀고 해도 챌리는 울기만 했다. 
형록이 운진을 가게 밖으로 니오게 했다. 
   “쟤가 많이 참는 애라는데, 이번엔 아주 단단히 화가 났나 보우. 영아씨가 하루 종일 달래는데, 계속 지 아버지 사는 데를 가르쳐 달래.”
   “죽었다던데? 모르나?”
   “죽었어?”
   “그랬다고 영호한테서 들었어. 그렇게 말한 거 같애. 차 사고라나...”
   “어, 그럼, 이거 큰일이네?”
   “애한텐 말 안 했구나... 지금 와서 죽었다고 하면 거짓말 한다 하겠지?”
   “당연히 안 믿지!”
어쨌거나 운진은 가게 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아빠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니 챌리가 나가려 하다가 이모에게 붙들렸다.
운진은 딸의 팔을 잡았다. “아빠를 놀래키면 안되짐마!”
   “You're not my father! (제 아빠 아니시잖아요!)” 
   챌리가 울어서 퉁퉁 부운 눈으로 운진을 노려봤다."What do you care!"
   “이 새끼가!” 운진이 챌리의 뺨을 때렸다. 
챌리가 뒤로 발랑 나동그라졌다.
   "이것들이, 정말!" 운진은 가게가 떠나가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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