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pt.2 3-6x026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0. 03:58

   그 때 형록이 밖에 왔다. 
그가 유리문을 밖에서 두드리며 안을 들여다 봤다.
운진은 문을 열어 그를 들어오게 하고 문을 잠그라고 손짓했다.
형록의 손에 비닐백이 들려있었다. “치킨 좀 사 왔우. 출출할 것 같아서.”
   “좋지. 장사는?”
   "비 오는데 바빴을 리 있우?"
   "술은 뭘로 할래?"
   “그 왜 우리 맨날 먹던 거, 그걸루 하지, 뭐.”
운진은 4홉짜리 와이트 레벨을 집어들었다. 
두 남자는 가게문이 제대로 잠겼나 다시 한번 확인하고 뒷방으로 들어갔다. 
두 남자는 한참 동안 말없이 주거니 받거니 위스키를 비우며 닭고기를 뜯었다.
술병이 반쯤 내려 간 뒤에야 술 비우기를 멈추고, 형록이 입을 열었다. 
   “내가 가게를 나오기 전에 폴 엄마가 전화를 했는데 말유, 키미하고 쵀리하고 대판 붙었답디다?”
운진의 귀에 폴 엄마라는 말이 새롭다. “그렇대?”
   “키미는 아빠가 쵀리를 때렸다는 사실에만 흥분했었는데...”
   “미친 놈, 내가 지 언니 좀 때렸으면, 그게 애비한테 화 낼 일이야?”
   “폴 엄마가 그러는데, 불쌍한 언니를 잘 해주지는 못할망정 왜 아빠가 때렸느냐 이거지. 근데 문제는 딴 데 있드만, 뭘.”
운진은 형록을 쳐다만 봤다.
형록이 말을 이었다. 
   “할머니가, 응? 형님 모친께서, 쵀리보고 나... 가... 라 했드만?”
   "하이고, 씨팔! 뭔 일이 있었지! 그럼, 그렇지!"
   “나 더 이상 못 마시겠우. 실은 나 지금 폴 엄마 데릴러 가던 길에 잠깐 들렀우. 우리 둘이 차 하나 갖고 왔다리 갔다리.”
   “오, 그러냐? 거기서 얘들이랑 자면 안 되겠냐?”
   “애들 할머니가... 폴 엄마더러 가라 한다네?”
   “씨발! 인간들이! 가자!” 
운진은 마시던 술병을 놔 두고 일어섰다.
   "형님 술 많이 한 것 같은데..."
운진은 참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인간들이 왜 이리들 잘났냐... 씨발, 피가 뭐길래. 피는 물 보다 진하다는 말을 이런 데다가 써먹는 줄 아나, 들?"
형록이 운진을 물끄러미 보다가 앞서서 나갔다.
형록 그가 열었다가 절로 닫히는 문 틈으로 비가 싸하고 들이쳤다.
   장모란 이는 사위가 밉다고 애들한테 안 좋게 해, 친모란 이는 챌리가 남의 집 자식이라고 대놓고 나가라고 해, 참... 
좆같은 세상이다. 
내가 죄가 많다!

   운진은 비를 뚫고 가며 차 안에서 목이 터져라고 악을 썼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좆 같은 세상! 좆 같은 인간들! 
이제 왜 애비란 인간이 이혼하는 마당에 자식새끼들까지 다 죽였는지 이해가 간다. 오죽했으면... 
이런 꼴로 애들을 아프게 할테니 그런 꼴 당하지 말라고 같이 죽자고 그러는구나... 
오죽 앞이 안 보였으면!
운진 그가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형록의 밴이 불을 안 끈 채 서 있었다.
   안에 들어가지도 못 한 모양이군...
운진의 눈 앞에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졌다. 
아랫방에 숨겨 놓은 총을 가져다가 몽땅 쏘아 죽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벌어졌다.
다들 죽고 말면 아무 것도 모를 것이다.
수치도 분노도 그리고 더 이상 눈물도 흘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집 앞은 눈이 멀 정도로 경조등 바다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시체를 하나씩 들고 나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죄다 둘둘 말아 질질 끌고 나올 지도 모르겠다.
   확인사살을 해야 하는데...
그는 제 집이 마치 시체수용소처럼 여겨졌다.

'[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2 3-8x028  (0) 2024.08.20
pt.2 3-7x027  (0) 2024.08.20
pt.2 3-5x025  (0) 2024.08.20
pt.2 3-4x024  (0) 2024.08.20
pt.2 3-3x023  (0) 202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