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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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1. 03:51

   숙희는 그 종이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진짜 못난 사람이야.’ 
그녀는 그 봉투를 어찌 할까 궁리하다가 옆에 있는 설이가 심부름한 면목도 있고 해서 일단은 무릎 위에 놓인 백 속에 넣었다.
설이가 헤드폰을 머리에 쓴 채 숙희를 돌아다봤다. 그리고 헤드폰을 귀에서 떼었다. "네?"
   “엘에이에 가면 삼춘한테 전해. 진짜 못난 사람이란다구.”
   “아아.” 설이가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딱 한대 때려주고 오는 건데!”
   “아아.” 설이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숙희는 심정이 찹착했다. 
   운진이 몇자 적은 글 중에 ‘그게’ 그의 이유의 전부였다는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좋아하는 여자라 해서 지나친 행동 즉 그의 말대로 ‘남자 대우를’ 무시하는 행동을 감내할 비굴함이 없었던 것이다. 
   조카인 설이가 들려준 삼촌이란 남자는 자존심이 무지하게 강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설이가 이미 삼촌이 맘을 바꾼 이유를 들려주지 않았는가. 
   애교로 봐 줄 수는 없었나 보지! 
   그러니까 뭐야. 결국 나 혼자 기다렸다는 거잖아!
설이가 헤드폰을 다시 썼다.
그게 숙희의 눈에는 설이가 대화를 피하는 걸로 보여졌다. 
아마 모르긴 해도 삼촌과 식구들이 자기에 대해 얘기했을 거라는 짐작을 하며 숙희는 조금은 비참한 마음이 들어 비행기 창밖을 내다봤다.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땅은 온통 나무숲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호수 위를 날아가는지 그 물표면에 해가 반사되었다. 
반사된 햇살에 눈이 부셔 숙희는 눈물이 나왔다. 
   반사된 빛이 눈을 아프게 해서...
스스로에게 그렇게 핑게를 대며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눈시울을 훔쳤다. 
시계를 보는 척 하고 손목시계를 보니 정오 쯤이었다.
아직 서너 시간은 더 날아가야 엘에이에 도착한다.
   숙희는 장례 장소에서 운진을 본 순간 달려가서 안기고 싶은 충동을 가졌었다.
그의 덩치가 안길 만한 크기냐 아니냐를 떠나서 남자에게 안기고 싶은 그런 절실함이었다. 그를 보는 순간 연륜이란 것이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었다.
운진 그는 전부터 건장한 체구는 아니었지만 적당한 사이즈의 남자였고, 나이가 들고 보니 약간 꾸부정해졌으나 삶에 찌든 고생을 한 몸은 아니란 느낌이 맘 놓이게 했다.
   숙희는 장녀의 기질을 타고 났으며 게다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성격이 거칠어지고 머스마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했으며 나이 먹어서는 혼자 살다 보니 여자로서의 멋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메말랐다.
   모친상을 당하고도 흘린 눈물이 겨우 몇방울 정도...
   공희는 앞을 못 볼 정도로 눈이 부었는데.
그러나 그녀는 운진 그에게만은 안겨서 울고 싶었다.
그런데 그가 보여준 태도가 그녀의 그러한 갈망을 사그러지게 했다.
방어하는 자세의 태도. 행여 가까이 올까 봐 피하려는 태도가 그녀를 실망시켰다. 
   '기다렸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라는 그의 표현이 참 괘씸하다.
기다렸으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지만 기억은 간직하고 있었나...
   그렇다면 나는 그를 기다렸나? 아니.
그녀는 그가 생각날 때마다 잊으려고 정반대 되는 짓거리를 했다.
그녀는 그가 그리울 때마다 남정네를 바꿔가며 셐스를 밝혔다. 그 상대는 일정치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도 젊었을 때나 가능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로 간 후 그런 셐스 향연 외에 마약을 접했다. 힘이 딸리면 약기운으로 버티었다.
그녀의 몸은 아직도 근사하지만 이제는 늙은 퇴기이다.
   그녀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는 대로 주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설이는 결혼을 한번 밀어보고 만일 잘 안 되어가면 다른 부서로 보내거나. 
아니면, 메릴랜드로 도로 보내거나...
난 그렇게 전혀 반응 없는 사람들은 첨 보네.
   여태 어느 남자건 내가 추파를 던지면 백이면 백 다 넘어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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