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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희가 운진에게서 눈을 떼어 운서를 봤다. 
   “설이가 그 매니저와 정식 데이트를 이미 시작했어요. 우선 제가 그 매니저를 알아보고 괜찮다 싶어서 어프루브 했죠. 설이도 기회가 오면 언니한테 말한다고 했는데, 이번에 제가 엄니 초상 치루러 오게 돼서 겸사겸사 왔다 말씀드리는 거예요. 설이, 아직 설겆이 하나?”
   “저 금방 나가요!” 설이가 소리쳤다.
마잌이 둘러보고는 말했다. “Am I missing something? (제가 뭐 미처 빠뜨린 거 있어요?)”
운서가 말했다. “니 누나 시집 보낸댄다. 아줌마가.”
   “A what?” 마잌이 못 알아듣고 반문했다.
   "Your sister is getting marri... (네 누나가 결...)"
   "What? She's getting married? (그녀가 결혼을 한다고요?)"
   "결혼을 전제로 만..."
숙희의 말을 운진이 짤막하게 잘랐다. “It sounds like just a date. (그냥 데이트 정도인가 봐.)”
마잌이 고개를 끄떡였다. “Oh-huh! Dating, huh? (어허! 데이트를 하셔?)”
   “지만 좋다문, 나야, 뭐. 그리고 숙희가 어련히 알아서 했을라구. 하지만 지금은, 좀 이르지 않나?” 
운서가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설이가 숙희를 보고 생글생글거렸다.
숙희가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제스처로 운진을 쳐다봤다.
운진은 숙희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떨구었다.     
숙희가 설이를 봤다. “제가 설이를 캘리포니아로 데려간 이상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책임을 져야죠.”
   “에이, 뭘. 저도 다 컸는데 지 행실 지가 알아서 챙기겠지.” 운서가 말했다.
이층에서 음악이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쯤에서 그만 실례를 해야겠다고 숙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만 가 볼께요.”
운서가 운진을 밀어서 일으켰다.

   집앞 드라이브에서 운진은 숙희를 마주했다. 
   “제 조카를 잘 보살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장례식에 와 주셔서 고마워요. 만일 운진씨 아니었으면 그 처럼 훌륭하게 진행되지 않았을 거예요.” 숙희가 말하고 나서 악수를 청했다.
운진은 그녀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그녀가 악수를 한 후 손을 거두며 말했다. “더 하실 말씀, 없죠?”
운진은 뭐라 할 말이 안 나와 고개를 숙였다. 할 말이 있고 많을 것 같은데 입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더 할 말 없죠 하고 물은 것이 말문을 막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숙희가 렌트한 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운진은 신 뒷꿈치로 땅을 팼다.
그녀가 제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운진을 한번 보고 나서 차를 출발시켰다. 
   그녀는 그 집의 긴 드라이브웨이를 후진으로 나오며 멀어지는 운진을 쳐다봤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멀어지는 차를 보고 있었다. 
숙희는 멀어지는 그의 얼굴에서 어떤 후회의 빛을 읽었다. 
그녀가 차를 길 가로 빼서 방향을 틀도록 그는 제자리에 굳은 듯 그대로 서 있었다. 
숙희는 애써 외면하며 차를 힘차게 출발시켰다.
   '참으로 답답한 사람! 그래도 말 한마디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기다렸단 말 그 말 하나도 못 해? 만일 그가 입을 열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그러나 그녀는 그가 입을 열었다면 그녀가 듣기 원하는 말은 안 나왔으리라고 여겼다.
그녀는 이번에 초상 때문에 오면서 만일 그가 붙잡으면 핑게 김에 눌러앉으려고 마음 먹었었는데.
운진은 운진대로 숙희의 렌트 카가 사라진 후에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 기다렸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죠...
   "삼춘! 부사장 아줌마 갔어?" 설이가 뒤에서 나타났다.
   "응, 그래!"
   "그냥?"
   "그냥이라니?..."
   "아줌마랑 그냥 바이 했나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