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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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1. 03:52

   운진은 영란이 남겨준 노트를 보고 그 동안 한사람씩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죽은 아내에게 빚을 진 여인네들은 대부분이 남편 몰래 쓴 돈들이었고, 알려지면 곤란한 꼴을 당할 두려움들이 있었다. 간혹 자녀들 등록금 문제로 급전을 돌렸던 이들은 쉽게 갚았다.
운진은 아내를 농락 당하도록 부추기고 입방아 찧었을 여인네들에게 복수심이 일었다.
그 중 두 여인은 운진 앞에서 순순히 팬티를 내렸다. 운진은 그 여인들이 예쁘건 날씬하건 상관없이 밀린 성욕을 배설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입을 통해서 어떤 소문을 내게 했다.
   골프 선생이란 자를 붙잡기만 하면 돈 뿐만 아니라 싹뚝 잘라 버린단다고...

   영호가 매형 운진의 하는 짓거리를 알고 잠자코 있을 리가 없었다.
   '새끼가, 씨발, 지가 뭐, 돈 환이나 돼? 이 여자 저 여자 닥치는 대로 접수하네?'
가게가 쉬는 날이면 아예 콧배기도 안 보인다는 정보를 알고, 그리고 그가 재미보고 다닌다는 것에 질투가 나는 것이다. 그 새 형을 살고 출옥한 조가가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허위인지 몰라도 골프 선생이란 자가 얼마 전에 이미 볼티모어를 떴다고.
   "그럼, 돈은!"
   "돈? 그것이 니 돈이냐?"
   "반만 먹기로 했잖아!"
   "그 반이 나한테 준다 한 거이지, 니 준다그 했냐?"
   "혼자... 아이, 씨발! 난 왜 이렇게 되는 게 없어!"
   "씨발놈이 말여, 궁하면 찾아와서 성 성 거리고, 아니면 나랑 맘 먹고. 죽을래?"
   "아, 아니... 돈을 혼자..."
   "꺼져라, 잉? 이 비굴덩어리 씹 같은 놈아!"
영호는 조가에게 얻어 터지기 직전에 그 자의 아파트를 나왔다.
   세상이 참말로 좆 같다... 뭐 하나 제대로 되어 가는 게 없네.

   운진은 책방 여인과 같이 있으면 평온함을 느낀다.
그녀는 배운 수준이 높은 축에 드는 만큼 나누고자 하는 대화도 주로 책 얘기 아니면 아이들 얘기 뿐, 흔히들 여인네들이 재미있어 하는 남의 이야기 까십은 전혀 안 나왔다.
   물이 발밑까지 들어왔다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운진은 그 여인이 건네준 책 하나를 들고 읽는 시늉이라도 하자고 들었다. 그랬다가 절로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누가 보더라도 부부로 보이지 않는 중년의 남녀가 바닷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운진은 안 하던 짓거리를 하려니 눈에 피로가 금새 왔다.
그는 책을 그늘에다 내려 놓았다.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여인도 책을 내렸다.
   "솔직히 말하라면... 결혼한 이 후로는 책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 생활이 특히 더 그러더라구요. 책 한권은 고사하고 글 한줄 읽을 틈도 없이들 사는 모습이 참 불쌍해요. 그래도 오선생님은 일요일은 쉬시잖아요."
   "녜, 그렇죠."
   "그로서리 하는 분들은 세븐 데이 연대요."
   "그로서리가 그래요. 그래도 늘 바쁜 건 아니니까 책은 볼 텐데."
   "비데오를 많이 보죠."
운진은 아내가 가게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카운터 밑에다가 소형 TV와 비데오 플레어를 놓았던 것을 기억했다. 
   "한 주에 보통 스무개..."
   "네에! 그러니까요!" 여인이 눈을 크게 뜨고 응수했다.
운진은 여인의 가지런한 치열이 노출되는 미소를 보며 다시 한번 안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방에서 같이 누워 있고 싶습니다."
   "솔직하시네요?"
   여인이 주저않고 주위를 둘러봤다. "저기..."
여인이 높다란 호텔을 가리켰고, 운진은 서슴없이 여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들은 사실 호텔의 이름도 보지 않았다.
그들은 나란히 팔뚝을 부딪치며 호텔 라비를 당당히 들어섰다.
무대가 미국이고 기왕에 즐긴 거면 당당히 즐기자고.
어차피 가린다고 알아주지도 않는 세상.
그리고 중년의 남녀는 자위로 위로가 되지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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