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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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3. 05:02

   운진은 어떻게 손도 못 써 보고, 재판이 테리 정 그녀의 승리로 끝났다. 
그녀가 피해 보상으로 요구한 이백만불이 백오십만불로 판결났다. 
가게들과 집이 그리고 차들까지 차압 당하고 모든 은행구좌도 동결되었다. 술가게 옆에 붙은 캐리아웃이 미처 명의를 넘기기 전이라 역시 차압 당하고 형록과 영아도 쫓겨났다. 
아이들을 운서가 잠시 데리고 있기로 하고, 운진은 꼴도 보기 싫지만 모친네 노인 아파트로 거처를 임시 옮겼다. 
   사업을 빙자로 아녀자를 농락한 파렴치한으로 걸려서 쪽도 못 쓰고 털린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운진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그가 의뢰한 변호사는 구류 살지 않는 것만 다행으로 알라고 위로했다. 
이혼녀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한 파렴치한으로 찍히고 두번 다시는 술가게를 못 하게 금지를 당했다. 
운진은 눈물도 안 나왔다. 
집의 벽 금고 안에 들은 현찰을 꺼낼 새도 없이 집 전체에 딱지가 붙는 바람에 그것도 털린 셈이었다. 그 돈만 빼내었어도 어디 가서 또 먹고 살 일을 찾을 텐데 하고 허탈해 하는 그에게 변호사가 조용히 하라고 타일렀다. 
집 안에 몇십만불의 현금이 숨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세무서에서 당장 조사 나와 문제가 더 커진다고 윽박질렀다. 까딱하다간 연방교도소에 끌려가고 끝장 난다고 귀뜸했다.
   차만 한 대. 그것도 챌리가 쓰던 헌차만 뎅그리니 남겨주고 싸그리 쓸어갔다. 챌리의 차는 다행히 불입금이 다 끝났고 부모의 이름으로 되어있지만 딸의 차라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고 선심을 썼다.

   그렇게 운진은 하루 아침에 알거지 신세가 되었다. 
입고 있는 옷만 간신히 걸치고 몸만 건졌다. 
내일모레면 소위 육십을 바라보는데 바닥 신세가 되었으니 언제 뭘 시작하고 언제 다시 자리를 잡는단 말인가 하고 기도 안 찼지만, 그래도 운진은 술을 입에 댄다든지 담배를 다시 피운다든지 하는 비굴한 짓은 하지 않았다. 
업보라고 그는 자조했다.
   운진은 누이의 스테이숀 웨곤을 빌려 타고 우선 어느 그로서리의 종업원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현찰로 삼백불을 주는 그 일은 일주일에 육일을 일해야 했다. 
   운진은 한달 만에 그 가게를 그만 두고 배달일을 찾아갔다. 
가게마다 다니며 주문한 물건들을 내려주고 수금을 해야하는데 때로는 외상으로 헛탕치고 무엇 보다도 길거리에 모여있는 흑인들이 무서웠다. 
그 일도 한달 만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보니 운진은 자신은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란을 만나 술가게를 하게 되고 돈을 만져 본 것이 순전히 운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날 묵은 신문을 얻으러 집동네의 비데오 방으로 가는데 하나 남겨 가지고 다니는 셀폰이 옆구리에서 울었다. 
운진은 무심결에 '헬로?' 하고, 받았다.
   “Hey, hey, what’s up, buddy! (어이, 친구, 무슨일이야!)” 어떤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Hi. Who is this? (누구지?)”
   “It’s me, Tom, my friend. (나야, 탐, 친구야.)” 
술 도매상의 단골 세일즈맨 탐이었다. 
   그렇게 전화 한 통화로 운진은 그의 구역의 보조 세일즈일을 얻었다. 다시 말해 영어를 못 하는 한국 사람들의 가게들을 다니며 한국 말로 주문을 받고 일을 처리해 주면 총 매상의 2 프로를 준다는 조건에 운진은 쾌히 동의했다. 
   만약 일주일에 총 만불어치를 팔아주면 2백불이 떨어지고 오만불어치를 팔아준다면 천불이 떨어진다. 그는 전에 주문을 하고 하면서 보통 일주일 주문이 한 세일즈맨에 십만불어치도 올라간 적이 있는 것을 기억해냈다. 십만불이면 2천불이다. 
   운진은 그 자에게 현찰로 달라고 합의하고 그에게서 가게 명단과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멋진 SUV에 같이 타고 그의 구역을 첫 방문했다. 
의외로 가게사람들의 반응이 차가웠다. 
특히 여자들은 운진을 아예 외면했다. 
그래도 운진은 열심히 통역하고 주문내용을 열심히 상의했다. 
첫날 운진은 목이 쉬고 기진맥진했다. 
   “So far so good! (그런대로 좋았어!)” 
   헤어질때 세일즈맨이 운진의 등을 툭 두드려 주며 큰소리로 격려했다. [내일 보자고!]
하루 종일 음료수 한병 얻어 마신 게 다였던 운진은 대답할 기운도 안 나왔다.
그는 기다시피 차를 몰아 노친네의 아파트로 갔다.
노친네가 밉다 하면서도 저녁상을 봐 놓았다.
운진은 마치 메뚜기떼가 논밭을 휩쓸며 밑둥이만 남기듯 그릇들이란 그릇은 싹 비웠다.
그는 트림을 하려다가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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